판소리의 현대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계속된다. 판소리 다섯 바탕으로 창극을 개발하거나, 편곡을 거쳐 서양 악기와 접목하기도 한다. 관객에게 판소리를 소개할 수 있는 방식들이 다채로워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고수와 소리꾼 그리고 추임새를 넣는 관객으로 구성된 전통 판소리의 형태가 유지되기란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는 판소리의 원형을 오늘날의 관객이 쉽게 맛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공연이다.
글 허서현 월간 <객석> 기자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원작으로 <억척가> <사천가>를, 남미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이방인의 노래>를 만들어 온 그가 2019년에 선보인 최근작이 <노인과 바다>다. 창작자 본인이 밝힌 대로, 앞선 작품들이 ‘판소리의 변형을 시작하는 일’에 가까웠다면 <노인과 바다>는 ‘판소리를 만드는 일’에 가까운 작업이다. 이에 맞춰 극적인 볼거리는 제거하고, 오롯이 한 명의 소리꾼이 명창이 되어 무대를 가득 채운다. 판소리 고유의 멋이 이 세련된 소리꾼에 의해 전달된다.
2019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초연된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는 이후 30회가 넘게 재연되며 관객의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대문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원작으로 이자람이 작, 작창을 담당했다. 여러 작품으로 호흡을 맞춘 박지혜가 연출로, 연신동이 시노그래퍼로 참여했으며 이 작품의 전담 고수 같은 이준형이 무대에 함께 오른다.
공연은 소설의 줄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다로 나간 노인 ‘산티아고’는 긴 씨름 끝에 청새치를 잡지만 상어에게 모두 뺏기고 허탈하게 돌아온다. 그러나 무대 위의 이자람은 이 이야기의 안과 밖을 솜씨 좋게 오가며 오늘날의 관객에게로 끌어온다. “회에는 역시 와사비에 간장인데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있나”라며 능청스러운 농담을 던지는 판소리라면, 전통 공연을 처음 보는 관객이라도 금세 흥이 오르게 마련이다. 반짝이는 바다 위의 물결, 잔뜩 지쳐 흔들거리는 배에서 든 낮잠, 낚시를 하는 긴박한 순간이 입에 착 붙는 우리말 의성어와 의태어로 표현된 것도 이 공연의 재미다.
이자람은 저 먼 나라 쿠바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산티아고’를 설명하는 서술자였다가,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낚싯줄을 손에 쥔 노인이 되기도 한다. 세밀한 각색을 거쳐 배치된 문장은 장단을 타고 관객의 마음속까지 흘러간다. “나는 너를 왜 죽여야 할까”라며 치열하게 버티던 노인은, “나는 왜 판소리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이자람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판소리의 원형을 지킨 채 동시대의 관객이 공감할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살아온 모든 삶을 쏟아 낚싯줄을 던진다”는 대목은 노인의 외침이자 소리꾼 이자람의 열연이며, 관객의 마음에 남는 메시지가 된다.
무대에 오르면 이자람은 늘 말한다. “판소리는 관객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얼쑤도 좋고, 잘한다! 그런 소리도 좋고요, 어떤 소리든 좋습니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가끔 “헐” “대박” 그런 소리도 들리더군요. 다 좋아요. 오늘 이곳에서 만들어질 공연, 잘 부탁드립니다.” 다가올 10월 만들어질 성남에서의 <노인과 바다> 공연 현장을 놓치지 말길!
이자람 판소리 <노인과 바다>
일시 | 10월 5일(토) 오후 5시
장소 |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문의 | 031-783-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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