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고생하고 갔어요. 매니저 없이 한국에 혼자 와서 삶은 달걀만 간장에 찍어 먹었어요. 저렇게 유명한 배우가 나이 들어 왜 고생을 자청하는지 좀 이해가 안 됐는데, (연기에 대한) 야망과 욕심이 있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영화 <다른 나라에서>(2012)에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출연했던 배우 윤여정의 기억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2011년 여름 전북 부안군 모항마을에서 촬영했다. 위페르는 같은 해 5월 사진전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가 홍상수 감독을 만났고, 출연 제의를 받자 흔쾌히 받아들였다. 홍 감독은 제작비 1억 원 남짓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배우들은 개런티라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로 적은 돈을 받고 출연했다. 위페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돈을 바라지 않고 낯선 ‘다른 나라에서’ 낯선 배우들과 함께했던 모습만으로도 배우 위페르의 연기에 대한 태도를 읽을 수 있다.
© Peter Lindbergh
위페르는 ‘유명’이나 ‘세계적’이라는 수식만으로는 형용이 부족한 배우다. 여러 숫자가 그의 배우 인생을 대변한다. 1971년 TV 드라마로 연기에 입문한 그는 칸 국제 영화제와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각각 두 차례 최고 여자 배우상을 받았다. 칸 영화제에서는 <바이올렛 노지에르>(1978) <피아니스트>(2001)로,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여자들 이야기>(1988) <의식>(1995)으로 트로피를 품었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는 <8명의 여인들>(2001)로 예술 공헌상을 받았고, 2022년에는 명예 황금곰상을 안았다. 한국 배우 고 강수연(<씨받이>로 베니스 영화제 여자 배우상)과 전도연(<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자 배우상), 김민희(<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베를린영화제 여자 배우상)의 성취를 합쳐 놓아도 닿지 못할 이력이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상을 모두 수상한 배우는 위페르를 제외하고 줄리에트 비노슈밖에 없다.
놀라운 기록은 더 있다. 위페르는 프랑스 최고 영화상인 세자르상 배우 부문 후보에 16회 올랐다. 역대 최대 기록이며 수상은 두 차례다. 위페르의 출연작 22편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역시 세계 어떤 배우보다도 많다. 출연한 장편 극영화만 100편이 넘는다 해도 놀라운 성과다. 위페르는 <엘르>(2016)로 미국 아카데미상 여우 조연상 후보가 되기도 했다.
연극 무대 활약 역시 눈부시다. 프랑스 최고 연극상인 몰리에르상 후보로 7회 지명됐고 2017년에는 몰리에르상 공로상을 받았다. 스크린과 무대를 아우르는 배우는 많지 않고, 양쪽 모두 두각을 나타내는 이는 더 드물다. 위페르의 다능한 연기력이 놀라운 이유다. 스크린과 무대 밖 활약 역시 눈에 띈다. 위페르는 2009년칸 영화제, 올해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활약했다.
21세기 유럽 영화를 대표하는 얼굴
숫자만 휘황한 게 아니다. 과대 포장된 연기가 아니다. 위페르의 연기는 매번 경이를 부른다. 그는 냉기와 온기를 종종 오가고 광기를 품을 때가 꽤 있다. 최근작만 봐도 그렇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출연한 <엘르>를 돌아보자. 위페르는 매력적이고 매사 자신감 넘치는 여성 미셸을 연기했다. 미셸은 한밤중에 자다가 괴한이 집에 침입하는 사건을 겪는다. 그는 불안감에 떨다가 괴한을 추적한다. 과거 아픈 기억이 있는 미셸은 자신이 당한 일들을 괴한에게 대갚음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으로 복수하는 미셸의 행동은 쾌감을 준다. 마치 유명 패션 잡지 ‘엘르’의 커버 모델 같은 관음증의 대상이 되기 싫다는 듯한 미셸의 모습은 여성 누구라도 환호할 만하다. 무표정 속에 자신만만함과 냉기를 표현해 내는 위페르이기에 가능한 역할이었을 터다.
<피아니스트>는 어떤가. 위페르는 유명 음악 학교 피아노 교수로 젊은 공대생과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에리카를 연기했다. 에리카가 사회 통념을 넘어선 사랑으로 치달을 때 관객은 위페르가 뿜어 내는 정념에 손을 꽉 쥐게 된다. 도박적인 영화에서 귀기 어린 연기만 보여 준 건 아니다. <다가오는 것들>(2016)에 고교 철학 교사 나탈리로 출연해 늦가을 햇볕 같은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나탈리는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 딸의 결혼을 동시에 겪으며 인생 내리막길을 걷는다. 나탈리는 세월을 거스르지 않고 눈물과 한숨으로 중년의 삶을 받아들인다. 위페르는 인생의 얄궂은 변곡점을 담담한 표정으로 표현해 내며 나탈리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낸다.
규정지을 수 없음으로 규정될 연기
위페르는 중산층 여인을 자주 연기했으나 젊은 시절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20~30대에는 하층 계급의 삶을 연기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천국의 문>(1980)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천국의 문>은 미국 ‘존슨 카운티 전쟁(1889~93)’을 소재로 하고 있다. 와이오밍주 토착민과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의 무력 충돌을 다뤘다. 위페르는 이 영화에서 토착민들 사이에서 노리개 취급받는 윤락녀 엘라를 연기했다.
캐나다 퀘벡주(프랑스어를 쓰는 곳이다)에서 온 엘라는 어디서나 하대받는 직업을 가졌으나 자존심 강하고 세상에 당당하게 나서는 인물이다. 그는 관객이 예상치 못한 로맨스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냉대받으면서도 자아가 만만치 않고 달콤한 사랑을 나누면서 불의에 분연히 일어서는 엘라는 위페르의 다면적인 얼굴을 통해 스크린에 구현된다. <천국의 문>은 개봉 당시 혹평을 듣고 재앙적인 흥행 기록을 남겼으나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종종 소환된다. <천국의 문>이 재평가받는 데 있어서 위페르가 2할 정도의 몫을 했다고 본다.
다종다양한 역할을 늘 자기 것으로 만들어 온 위페르의 연기는 ‘규정지을 수 없음으로 규정할 수 있는’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위페르의 진정한 강점은 연기라는 기교가 아니다. 역할에 대한 포용성과 유연성이 데뷔한 지 53년이 되고도 여전히 전성기인 위페르를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유럽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연기를 했고 <클레어의 카메라>(2018)와 <여행자의 필요>(2024) 등 홍상수 감독 영화에 만도 세 번이나 출연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과 미국, 독일, 포르투갈, 브라질,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대만 무대에도 섰다.
2011년 5월 인터뷰로 만났을 때 위페르는 “영화는 서로의 문화를 평화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창”이라고 말했다. 문화를 통해 세계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그의 의지가 읽히는 발언이다. 11월 1~2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상연될 위페르 주연 연극 <메리 스튜어트>는 그의 열린 마음만으로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글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 전문기자
1999년 한국일보 입사 후 편집부와 사회부, 국제부 등을 거치며 엔터테인먼트 팀장과 문화부장, 신문에디터로 일했다. 2004년부터 영화를 취재해 왔으며, 영국 서식스대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저서 『질문하는 영화들』 『말을 거는 영화들』, 역서 『할리우드 전복자들』로 영화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소통하는 한편, 뉴스레터 ‘영화로운’으로 매주 구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