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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NAM FESTIVAL·칼럼] 지역을 살리는 ‘문화의 힘’, 페스티벌의 경제학

“주여, 아프리카를 구원하소서/영광을 높이 올리소서.”

지난 8월 25일 서울대공원에서 열린 ‘제2회 원유니버스페스티벌(OUF2024)’. 몇 시간 전부터 무대 앞을 지키고 있던 관람객들이 갑자기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국기를 흔들며 국가를 불렀다. 이들이 기다리는 가수는 바로 오늘의 헤드라이너, 제2의 아리아나 그란데라 불리는 ‘타일라’다. 2002년 남아공에서 태어나 빌보드 싱글 차트 핫100 7위에 그래미 베스트 아프리칸 뮤직 퍼포먼스상까지 거머쥔 소녀.

‘아프리카의 공주’로 불리는 그녀의 방한 소식에 한국에 사는 현지 팬들이 모두 모였다. 전국 어디에서 페스티벌이 아니면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을까. 그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던 친구가 말한다. “네가 남아공 사는데 방탄소년단이 왔다고 해 봐. 연차 내고 달려 나올걸?”

네덜란드에서 온 2024 DLDK Korea 페스티벌 현장


“난 맞서 싸울 거야/일곱 국가의 군대는 날 막을 수 없어.”

8월 3일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이틀째 밤. 헤드라이너로 오른 기타리스트 잭 화이트가 ‘세븐 네이션 아미’를 연주하자 관객들은 떼창을 시작했다. 관객석 페스티벌 깃발들을 중심으로 슬램(slam·관객들끼리 몸을 부딪치며 노는 행위)도 발생했다. 이 노래는 잭 화이트가 어릴 적 ‘구세군(Salvation Army)’을 ‘일곱 국가의 군대(seven nation army)’로 잘못 알아들은 것에서 유래한 곡이다. 영국 싱글 차트 6위로 데뷔했고, 뇌리에 박히는 베이스라인으로 스포츠 응원가로 많이 쓰인다. “워~워 워워워 워~워.” 축구 경기장에서 응원가로 부르던 노래를 원곡자와 함께 부를 수 있다니! 페스티벌이 아니면 이런 짜릿한 순간을 또 맞이할 수 있을까?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전국은 페스티벌로 더욱 뜨거웠다.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코리아 2024’ ‘월드디제이페스티벌’ 같은EDM(전자음악) 페스티벌, ‘워터밤’ ‘송크란(S2O Korea)’ 같은 워터 페스티벌, 연예 기획사 하이브 내 레이블이 총출동하는 ‘위버스콘’, 맥주 브랜드 카스 주최 ‘카스쿨 페스티벌’까지 장소와 장르도 다양했다. 거의 매주 페스티벌이 열리면서 휴가를 페스티벌로 가는 ‘페스티벌 바캉스’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2024 인천 펜타포트락 페스티벌 © 인천시


가을 페스티벌 라인업도 만만치 않다. 10월 4일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올림픽공원 ‘아트 포레스트 페스티벌’, 10월 18일부터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10월 26일부터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등이 순차적으로 열린다. 성남시는 10월 5일부터 양정웅 연출가와 함께 다양한 융복합 문화예술 콘텐츠로 꾸미는 제2회 성남페스티벌을 준비 중이다. 페스티벌은 어떻게 운영되고 수익을 낼까? 페스티벌이 지역에 가져오는 경제 유발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페스티벌 경제학’을 분석했다.


메인 스폰서를 잡아라

보통 뮤직 페스티벌의 티켓비는 1일 10만 원 안팎이다. 별도의 좌석 대신 공연장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거나 무대 앞에 서서 공연을 즐긴다. 대략 낮부터 밤 10시 정도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출연진이 무대에 오르고, 관객은 원하는 시간에 들어가고 나올 수 있다. 다만 티켓이 비교적 고가임에도 이것만으로는 수익이 크지 않아서, 유료 관객 수가 5만 명이었던 월드디제이페스티벌도 순수익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아티스트 섭외비가 워낙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페스티벌의 시작은 메인 스폰서를 잡는 것부터’라는 말이 나온다. 원유니버스페스티벌의 메인 스폰서는 ‘아디다스’, 워터밤은 ‘스프라이트’,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KB 국민카드’다. 펜타포트는 원래 KB국민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했지만, 올해는 타 카드도 가능한 대신 KB국민카드 사용 시 일정 부분 할인 방식으로 바뀌었다. 올해 펜타포트 관객 수는 15만 명. 이들이 락페를 더욱 저렴하게 즐기기 위해 KB국민카드를 신청했다면, 단기간 카드 신청자 수로는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페스티벌하면 빠질 수 없는 ‘술’ 회사도 주요 스폰서다. 올해 월드디제이페스티벌 맥주 후원사는 버드와이저, 8월 18일 서울 압구정 로코 콤플렉스 뒷마당에서 열린 ‘백야드 페스티벌’의 후원사는 테킬라 1800이었다. 레몬 한 조각, 약간의 소금과 함께 테킬라 한 잔을 마시고 국내 대표 래퍼들의 공연을 즐기는 기분이란! 미LA 힙합 가수 저택에서 열린 프라이빗 파티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수천억 원대 경제 유발 효과

페스티벌에서는 음악만 듣지 않는다. 보통 음식물 반입이 안 되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을 안에서 해결한다. 맥주와 하이볼 등은 1만 원 안팎, 음식은 1~2만 원 선이다. 타 지역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의 경우 숙박도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페스티벌로 유발되는 경제적 효과가 크다. 인천시는 매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로 유발되는 경제 효과를 400억 원 이상으로 추정한다.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은 360억 원, ‘워터밤 속초’가 속초 지역에 일으킨 경제 효과는 100억 원 이상으로 추정한다. 올여름에는 주말마다 전국 각지에서 페스티벌이 열렸으니, 전국적인 경제 유발 효과는 수천억 원대다.

2004년부터 매년 가을 경기도 가평에서 열리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누적관람객 수는 300만 명, 연간 경제 효과는 100억 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가평 인구(2022년 기준 약 6만 명) 규모의 관람객이 페스티벌을 찾는 것이다. 한물간 놀이공원으로 불리던 과천 서울랜드는 잠실운동장 리모델링으로 갈 곳 잃은 페스티벌들이 둥지를 틀면서 ‘페스티벌 성지’로 거듭났다. 네덜란드에서 온 가장 힙한 페스티벌 ‘2024 Don’t Let Daddy Know’, 태국에서 건너온 워터뮤직 페스티벌 ‘S2O Korea’ 등이 이곳에서 열린다. 2018년 영업 이익은 81억 원적자였지만, 페스티벌 덕에 지난해에는 4억 원 흑자를 기록했고 입장객 수도 증가했다.


페스티벌 찾는 외국인 관광객

페스티벌을 위해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도 많아졌다. 여행 플랫폼 아고다는 “올여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수는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 워터밤 대구,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등 인기가 높은 뮤직 페스티벌 기간 즈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K팝 아이돌이 출연한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이 개최된 6월 7~9일 부산 숙박을 위한 외국인 검색은 작년 동기간 대비 158% 증가했고, 워터밤 기간 대구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0% 증가했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시기 인천 검색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1.5배가 증가했으며, 일본·대만·중국·홍콩·미국 등이 최다 검색 국가로 나타났다.

지난 6월 15~16일 인천 인스파이어 리조트에서 열린 ‘알리 익스프레스 2024 위버스콘 페스티벌’은 이틀간 2만2,000여 명이 현장을 찾았고, 그중 51%가 외국인 관객이었다. 세븐틴 등 K팝스타들이 총출동했기 때문이다. 앞서 6월 7~8일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열린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에서도 외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우버 택시를 타고 공연장으로 온 그들은 호텔과 그 주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페스티벌을 즐겼다. 페스티벌 VIP 손님들은 호텔 내 클럽인 크로마와 연계해 행사를 진행했는데, 전용기를 타고 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억대 술을 구입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페스티벌 관계자는 “VIP 매출이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며 “무대 옆 VIP 라운지의 기본 티켓은 200만 원부터, 비싼 술들은 몇천만 원대까지도 판매된다”고 말했다.

오오카 히로토 아고다 북아시아 서플라이 부문 부사장은 “세계적으로 흥미로운 행사와 경험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가 많아지면서 아시아 지역의 문화 행사를 위한 여행이 점점 더 각광받고 있다”며 “K팝은 물론 K푸드, K뷰티 등 한국 관광의 강점이 문화에 기인하는 만큼, K컬처는 한국의 인바운드 여행 산업의 잠재력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건너온 워터 뮤직 페스티벌 ‘S2O Korea’ © S2O Korea


이혜운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

산업부와 문화부, 베를린 특파원 등을 거쳐 현재 경제부에서 재테크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문화 분야를 경제 산업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주 가장 핫한 소식을 담은 뉴스레터 ‘돈이 되는 여기 힙해’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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