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영화 속 클래식] 영화 <샤인>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운명을 뒤바꾼 ‘음악의 힘’

흔히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악마의 협주곡’으로 불린다. 이런 별명을 얻게 된 건 1996년 영화 <샤인(Shine)> 덕분이기도 하다. 호주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이 협주곡으로 콩쿠르 우승을 거둔 뒤 신경 쇠약으로 쓰러진다. 이 협주곡은 그에게 우승의 영광과 정신 질환으로 인한 혹독한 치료라는 시련을 모두 안겨 준 셈이다.


샤인(1997) | 감독 스콧 힉스 | 출연 제프리 러시, 노아 테일러 외

영화의 성공으로 주인공 역을 맡았던 배우 제프리 러시는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실제 주인공인 헬프갓의 삶과 음악 역시 재조명됐다. 더불어 이 협주곡도 ‘미치지 않고서는 연주할 수 없는 작품’으로 신비화되기에 이르렀다.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과 영화 사이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헬프갓은 런던 유학 이전인 호주 시절부터 이미 이 협주곡을 콩쿠르에서 연주했다. ‘악마의 협주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한 주인공의 고군분투는 다분히 영화적인 설정인 셈이다. 영화에서 묘사된 폭압적인 아버지상 역시 헬프갓의 가족 내부에서도 이견과 논란을 낳았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더욱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지금은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콩쿠르 결선에서 즐겨 연주하는 ‘비장의 카드’가 되었다는 점이다. 상전벽해에 가까운 이런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협주곡이 탄생하기 전후의 역사를 일별할 필요가 있다.

타고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이기도 했던 라흐마니노프는 1904~06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의 지휘자를 맡았다. 이 시기에 그는 차이콥스키와 글린카, 무소 륵스키와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까지 모두 11편의 오페라를 89회나 지휘했다. 두 편의 오페라도 직접 쓰고 초연했다. 하지만 볼쇼이 극장 시절은 동시에 지휘자와 작곡가, 피아니스트 사이에서 내면적 갈등이 커진 시기이기도 했다. 결국 1906년 그는 극장에서 사임한 뒤 가족과 함께 드레스덴으로 총총 떠났다. 드레스덴에 정착한 직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는 여기서 완전히 은둔자처럼 지내고 있다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으며 아무 데도 가지 않아. 일을 엄청나게 하고 있고 기분이 무척 좋다네.”

과중한 책무에서 벗어난 그는 교향곡 2번과 피아노 소나타 1번, 교향시 ‘죽음의 섬’까지 대작을 다시 쏟아 내기 시작했다. 피아노 협주곡 3번 역시 드레스덴 시절의 끝자락에 착수해서 1909년 9월 23일 러시아 이바놉카의 별장에서 최종 완성했다. 당초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폴란드계 미국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1876~1957)에게 헌정하고자 했다. 하지만 호프만의 거절로 작곡가 자신이 직접 초연을 맡았다.

작곡가는 대서양을 건너는 배 안에서 무음(無音) 피아노 건반으로 자신의 곡을 연습했다고 한다. 이 협주곡을 완성한 직후 피아노 협연과 독주, 지휘까지 26차례의 미국 순회공연이 빽빽하게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협주곡도 미국에서 빛을 보았다. 1909년 11월 28일 뉴욕 심포니(지휘 월터 담로슈)와의 협연으로 초연했고, 두 달 뒤인 1910년 1월 16일 카네기 홀에서 구스타프 말러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또다시 협연했다. 세기말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두 음악가는 이렇게 대서양 건너편에서 조우했다.

지금은 믿기 힘들지만 미국 초연 직후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하지만 이 협주곡의 운명을 뒤바꾼 일등공신이 있다면 역시 러시아 출신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일 것이다. 호로비츠는 뉴욕 스타인웨이 전시장 지하에서 작곡가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 협주곡을 피아노로 함께 연주했다.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츠는 통째로 곡을 집어삼켰다”며 경탄했다. 정확히 서른 살 차이였지만 그 뒤로 둘은 의기투합했다. 호로비츠 역시 작곡가에 대해 “라흐마니노프가 거대한 숲이라면 나는 크든 작든 한 그루의 나무일 뿐”이라며 존경심을 잃지 않았다.

후기 낭만주의와 현대의 갈림길에서 라흐마니노프는 언제나 전자의 길을 택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최후의 낭만주의자’로 불린다. 이 협주곡 1악장 도입부의 유명한 단조 주제 선율은 러시아 정교의 성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이 주제에 대해 “민요에서도, 교회에서도 가져오지 않았다. 저절로 쓰였으며 성악가가 노래하듯이 피아노를 통해서 선율을 노래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한 옥타브 차이의 단선율을 양손으로 연주하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언뜻 단순하게 보이지만 곧바로 작곡가 특유의 화려하면서도 복잡한 형태로 급격하게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2악장은 ‘간주곡’이라는 악장 표기처럼 휴식 없이 3악장으로 이어지면서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마지막 3악장에서는 첫 악장의 주제들이 변주되어 다시 등장하면서 작품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물론 그 끝에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종결부가 기다린다. 작곡가 특유의 네 음으로 이뤄진 결승점을 무사통과하는 순간, 우레 같은 청중의 박수갈채도 예고되어 있다. ‘악마의 협주곡’으로 불렸던 난곡도 어느새 연주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된 셈이다.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3번

블라디미르 호로비츠(피아노), 유진 오먼디(지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Sony Classical, CD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하며 인기의 불씨를 지폈고, 수차례 음반으로도 남겼다. 음질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호로비츠의 음반들 중에서는 간혹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가 있지만, 모두 후대의 전범(典範)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위대한 피아니스트’에서 뉴욕 타임스 출신의 평론가 해럴드 숀버그는 호로비츠의 연주에 대해 “라흐마니노프 자신도 결코 도달하지 못한 그런 방식으로 마지막 악장의 클라이맥스를 천둥 치듯이 내려침으로써 오케스트라 소리를 압도했다”고 평했다.


김성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바렌보임의 전기를 번역했고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 『시네마 클래식』 『모차르트』 『씨네 클래식』 등의 저서가 있다. 다양한 강연과 해설 무대는 물론, 유튜브 채널 ‘클래식 톡’을 통해 클래식과 대중의 간극을 줄여 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진 제공 (주)라이크콘텐츠

Comentario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