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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2] 책, 트렌드가 되다: 출판계의 희망으로 떠오른 MZ 독자들


© 창작과비평사

 

성인 독서율 43% 시대, 절망할 수도 있는 출판계의 희망은 MZ 독자들이다. 디지털 친화적인 세대, 소위 책 안 읽는 세대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출판계의 희망이라는 말에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서를 하나의 ‘힙’으로 받아들이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2030 독자들의 모습은 출판 시장이 주목해야 할 하나의 트렌드이자 현상이다.


그들이 책에 빠진 이유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 실태’의 수치를 통해서도 이현상은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해당 조사에 따르면 성인 가운데 1년간 일반 도서 1권 이상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은 43%로 조사가 시작된 이래 역대 최저다. 다만 우리가 살펴볼 것은 연령대별 독서율이다. 19~29세의 독서율은 74.5%로 조사 집단 가운데 가장 높다. 뒤를 잇는 세대 역시 30~39세로 이 또한 68%에 달한다. 성인 절반 이상이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은 이들 세대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제 살펴볼 것은 이들의 독서 문화다. 성인들이 책을 읽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꼽은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4.4%), ‘책 이외 매체를 이용해서’(23.4%)를 뛰어넘어 이들이 책에 빠지게 된 이유는 뭘까? 출판사 마케팅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들에게 독서는 곧 ‘경험’으로 수렴한다. 이색적이거나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는 경험을 찾아 헤매는 2030 문화 향유층에게 책은 어쩌면 가장 적합한 콘텐츠일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의 니즈에 호응해 출판사들의 전략도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북클럽이다. 2011년부터 운영을 시작해 북클럽의 시초로 불리는 출판사 민음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가입 신청 첫날부터 신청자가 몰려 홈페이지 접속이 지연되는 등 호응이 이어졌다. 문학동네, 마음산책 등 이제는 여러 출판사에서 전개하는 북클럽 서비스는 사실 대중보다는 마니아층, 즉 팬덤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평균 4~8만 원의 금액을 지불하는 대가로 1년간 출판사의 굿즈와 책을 제공받고 가입 회원을 위한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은 직접 찾아 나서지 않으면 관심을 갖기 힘들다는 의미다.

최근 출판사들은 젊은 연령대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팝업 스토어를 열고 기존 구매층이 아닌 신규 독자들의 방문을 유도한다. 이곳에서 단순히 책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굿즈나 공간 인테리어를 통해 이목을 끄는 방식도 공통적이다 © 창작과비평사


힙한 취미가 된 독서

이러한 전략은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세대의 힙함과 맞닿아 있다. 주류 시장에서 위스키 열풍이 부는 것처럼 이들의 콘텐츠 시장에서는 독서가 독특하고 가치 투자를 할 수 있는 취미 활동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부장은 “한쪽에선 성인의 절반 이상이 책을 안 읽는다고 얘기하지만 다른 쪽에선 책이 새로운 ‘힙’으로 자리 잡아서 독서를 인증하기도 하고 공유하기도 한다”며 “책과 텍스트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있는 만큼 마케팅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면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 영국 언론 <가디언>에서 ‘Z세대가 책과 도서관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보도를 통해 Z세대 모델 카이아 거버의 “독서는 정말 섹시하다”는 발언을 인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밀리의서재는 더현대 서울 6층에서 소설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의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소설 속 주인공 혜원의 분실물인 필통, 가방 등은 물론 책 속 문장을 천에 새긴 키링을 한정판 굿즈로 제작, 판매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 신재우


북클럽을 통해 팬층을 구축했다면 잠재적 독자들에게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 출판사들은 오프라인으로 향한다. 비록 타 업종에 비해 늦은 경향이 있지만, 출판사들은 최근 팝업 스토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문학동네, 밀리의서재, 문학과지성사, 창비 등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팝업 스토어를 개최한 출판사들은 마치 식품·패션 브랜드처럼 홍보에 나섰다. 우선 서울 마포, 성수, 여의도 더현대 등 젊은 연령대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매장을 열고 기존 구매층이 아닌 신규 독자들의 방문을 유도한다. 팝업 스토어에서 단순히 책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굿즈나 공간 인테리어를 통해 이목을 끄는 방식도 공통적이다.

지난달 밀리의서재가 더현대 서울 6층에서 연 소설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의 팝업 스토어에서는 책 외에도 소설 속 주인공 혜원의 분실물인 필통, 가방 등은 물론 책 속 문장을 천에 새긴 키링을 한정판 굿즈로 제작해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판매했다. 같은 달 마포구에서 출판사 창비가 500호 시선집 발간을 기념해 연 팝업 스토어 ‘시크닉’에서도 키링, 책갈피, 에코백 등 현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한정판 굿즈 판매가 이목을 끌었다. 실제로 한 출판사 관계자는 “팝업 스토어는 굿즈 제작비, 임차료 등을 고려하면 이윤이 남지는 않는다”며 “그보다는 홍보 효과, 기존에 닿을 수 있던 소비자층이 아닌 책과 무관한 독자들과 접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고 설명했다.


출판사들의 유의미한 변신

출판사들의 자체 콘텐츠 제작도 활발해졌다. 구독자 22만 명을 보유한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는 직접 회사 내 편집자들의 일상을 보여 주면서 자연스럽게 신간을 소개한다. 이 밖에도 그간 독자들이 궁금해했던 출판사 업무 등을 소개하면서 독자들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유튜브 채널 외에도 많은 출판사가 SNS를 통해 책 관련 소식을 알리고 신간과 관련된 짧은 비하인드 스토리나 출간 예정작 예고를 올리기도 한다. 서점 매대나 온라인 서점 등을 통한 간접 홍보뿐만 아니라, 소통 채널을 직접 운영하면서 한층 가까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등의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다.

책 자체가 아닌 굿즈와 북클럽 활동, SNS에 책 표지를 찍어 올리는 독서 인증샷 등은 교양의 영역이자 지혜의 원천이었던 독서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최근 국내 주요 출판사 71곳의 총 영업 이익이 42% 넘게 급감하고 출판사들이 폐업 위기라는 소식이 속속 들려오는 상황에서 고고한 추락보다는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출판사에도, 종이책이 계속해서 나오길 기다리는 독자들에게도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이제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다. 책에 대한 경험 그 자체가 어느덧 새로운 독서가 됐다.

구독자 22만 명을 보유한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는 직접 회사 내 편집자들의 일상을 보여 주면서 자연스럽게 신간을 소개한다 © 민음사TV


신재우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문화일보에서 출판·문학을 담당 중이다. 매주 금요일 문화일보에서 ‘북리뷰’를 쓴다. 독서율 43%의 시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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