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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KDOG·미리보기] 힙합으로 표현한 젊음의 억압과 절망: 보티스 세바 & 파 프롬 더 놈 <블랙독>


© Camilla Greenwell

내년 개관 20주년을 맞이하는 성남아트센터는 무용 공연을 자주 올리는 극장은 아니다. 하지만 무용 공연 자체의 주목도는 꽤 높은 편인데 이는 선택과 집중에 탁월하다는 의미다. 특히 해외 초청 무용 공연의 경우 몬테카를로발레단, 키부츠댄스컴퍼니, 중국국가발레단, 윌리엄 포사이스, 마츠 에크, 올리비에 뒤부아, 에미오 그레코, 중국가극무극원 등의 대표작들을 소개하며 전문가는 물론 애호가와 일반 관객들까지 만족시켰다. 그렇기에 성남아트센터에서 언제, 어떤 해외 무용을 선보일지 관심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오는 6월 22일과 23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국내 초연을 앞둔 힙합 댄스 시어터 <블랙독>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춤에 빠진 소년, 힙합의 스타가 되다

<블랙독>은 ‘힙합 댄스 시어터(hip hop dance theater)’라고 할 수 있는데, 힙합을 중심으로하여 극적인 전개를 펼치는 춤 예술 작품을 의미한다. 이는 안무와 연출을 맡은 보티스 세바(Botis Seva)의 예술적 특질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199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보티스 세바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 지역 청소년 클럽에서 자작 랩과 비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중학교 때 춤을 접한 후 그 매력에 푹 빠졌으며, 17세쯤에는 일반적인 교육 과정을 벗어나 춤을 업業으로 삼기 위한 과정을 밟아 갔다. 힙합, 신체극, 현대무용 등 다양한 춤 영역을 넘나드는 활동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세바는 점차 영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힙합 춤 공연의 선두 주자로 일컬어지게 된다. 세바의 창작은 춤에만 국한되지 않고 연극적 요소, 영상, 텍스트, 디지털 매체 등 여러 분야를 흡수했다.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사회적 변혁과 자전적 경험에 근간한 창작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번 <블랙독>에서도 그 예술적 특질이 뚜렷하다.

보티스 세바가 19세였던 2009년에 런던에서 창단한 ‘파 프롬 더 놈 Far From The Norm, 이하 FFTN’은 ‘평범함에서 벗어난다’는 명칭 그대로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힙합 공연 단체다. 구체적으로는 팝핀부터 브레이킹, 크럼프, 하우스까지 다양한 춤을 넘나드는 한편 현대무용처럼 공연예술화된 장르의 특질 또한 느껴진다. 이렇듯 독창적이고 실험적이면서도 활력이 넘치는 고도로 숙련된 활동을 지향하며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2015년경 그는 예술가로서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다. 새들러스 웰스(Sadler’s Wells) 극장의 힙합 댄스 페스티벌 ‘브레이킹 컨벤션(Breakin Convention)’에서 제공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안무와 연출 등에 관한 기술을 습득한 시간은 세바가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좀 더 공고히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후 세바는 영국뿐 아니라 덴마크, 노르웨이, 스코틀랜드, 콜롬비아 등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갈 기회를 얻게 된다.


슬픔과 절망을 견뎌낸 모두를 향한 위로

보티스 세바는 그동안 정치적·사회적 이슈와 동시대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며 평범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창작으로, 일관된 주제 의식을 지향해 왔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힙합의 공연예술화라는 새로운 무대 언어를 통해 때론 감각적으로 때론 사유적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차별화된 연행(演行)을 펼치는 FFTN에 전 세계 극장과 축제가 러브콜을 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6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소개하는 <블랙독>에는 이러한 예술적 특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블랙독>은 2018년 세계 초연 당시, 런던 새들러스 웰스 극장의 20주년 기념 위촉 공연으로 제작되어 전문가 집단과 일반 관객들의 큰 호평을 받았고 이는 곧 전 세계적인 관심도로 이어졌다. 해당 극장의 예술프로그래머는 “새로운 세대를 위한 가장 정서적으로 지능적이고 신체적으로 혁신적이며 근면하고 영감을 주는 새로운 스타일의 하나”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 작품의 성공은 공연예술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올리비에상의 ‘최우수 무용 신작’ 부문 수상으로 증명되었다.


© Camilla Greenwell


<블랙독>은 보티스 세바가 어린 시절 흑인으로서 겪은 차별과 억압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청년들이 절망과 두려움에 대처하는 방식을 담은 작품이다. 실제로 그는 “블랙독은 트라우마와 슬픔의 시간을 지나 온 모두를 위한 작품이다. 우울증이나 상실의 고통을 겪는 가족을 묵묵히 지켜봐야 했던 모두를 위한 작품이기도 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블랙독>은 이 시대의 청춘들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한 아름답고 감각적이면서도 어둡고 잔혹한 춤적 기록이다. 지겹게 따라다니는 유년기의 기억과 성인기의 트라우마 앞에서 평화를 찾기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자문하고, 자아 발견이 자아 파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힙합을 중심으로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예리한 사회의식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음악, 조명, 의상과의 협업적 접근 역시 주요한 역할을 한다.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온 작곡가 톨벤 실베스트(Torben Sylvest)는 때론 리드미컬하고 때론 감성적인 선율로 내면의 복잡 미묘한 감정의 추이를 적절하게 돋운다. 조명을 맡은 톰 비서(Tom Visser)는 삶의 밑바닥을 파고드는 환멸을 무채색 톤의 어두운 빛으로 표현한다. 의상을 맡은 라이언 도슨라이트(Ryan Dawson-Laight)는 힙합에 어울릴 만한 의미를 더한다.

보티스 세바는 창작에 대한 자유분방한 접근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특히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블랙독>은 배틀 형식의 힙합 춤에서 벗어나 ‘공연예술화된 힙합 춤’의 새로운 가치와 감흥을 전해준다. 안무가로서는 매우 젊은 서른세 살이라는 나이에 어떻게 전 세계 예술계가 주목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는지, 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날 <블랙독> 무대를 통해 보티스 세바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힙합 댄스 시어터 <블랙독>

일시 | 6월 22일(토) 오후 7시 30분, 23일(일) 오후 3시

장소 |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문의 | 031-783-8000


심정민 무용평론가, 한국춤평론가회 회장

무용평론가이자 비평사학자.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하고 여러 대학에 출강한 바 있다. 국립현대 무용단 이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위원, 국립극장 70년사 편찬위원을 필두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국립극장 등에서 심의·평가·자문 등을 맡아 왔으며, 저서로는 『무용비평과 감상』(2020)과 『춤을 빛낸 아름다운 남성무용가들』(2019)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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