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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지휘 콩쿠르 깊이 보기: 지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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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이승원이 4월 20일 세계적 권위를 지닌 덴마크의 니콜라이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악기나 성악 분야의 콩쿠르에 비해 덜 주목받아 온 지휘 콩쿠르가 음악 팬들의 화제로 떠올랐다. 콩쿠르를 거치지 않은 지휘자들도 많은 것 아닌가? ‘피지컬 테크닉’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악기나 성악에 비해 지휘에서 순위를 가리는 것은 까다롭지 않을까? 유명 지휘 콩쿠르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떤 절차를 통해 입상자를 가릴까?


이승원이 우승한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는 덴마크 방송 교향악단 창립에 기여한 러시아 출신 지휘자 니콜라이 말코를 기념하기 위해 1965년 창설된 지휘 콩쿠르다. 현존 유명 지휘 콩쿠르 중에서도 브장송 콩쿠르 다음으로 역사가 오랜만큼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클라우스 페터 플로어(1983), 조슈아와일러스타인(2009), 라파엘 파야레(2012) 등의 유명 지휘자를 배출했으며 1998년에는 재일교포인 세이쿄 김(김성향)이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지난 2023년에는 윤한결이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우승의 낭보를 전해왔다. 우리에게는 1977년 금난새가 4위를 차지한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가 낯익지만 이 둘은 다르다.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는 1969년 창설돼 베를린에서 개최됐으며 1989년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관계가 끊긴 뒤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금난새가 입상한 1977년 대회는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우승했고 폴란드의 야체크 카스프치크가 3위를 차지한 ‘핫한’ 대회였다.

윤한결이 우승한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은 잘츠 부르크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2010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다비드 아프캄(2010), 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2012), 로렌초 비오티(2015), 아지즈 쇼하키모프(2016) 등을 우승자로 배출했다. 같은 2023년에는 한국인 이해가 이탈리아 그로세토에서 열린 제2회 쿠세비츠키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 2021년에는 이든이 프랑스의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 결승에 올라 특별상을 수상했다. 말코 콩쿠르와 함께 지휘 콩쿠르 중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이 콩쿠르는 1951년부터 열리고 있으며 오자와 세이지(1959), 즈네덱 마칼(1965), 헤수스 로페스코보스(1968), 요엘 레비(1978), 오스모벤스케(1982), 유타카 사도(1989), 리오넬 브링기에(2005) 등을 수상자로 배출했다. 이든은 2023년 불가리아 플로브디프 오페라 콩쿠르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앞서 2013년 브장송 콩쿠르에서는 윤현진이 결선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윤현진은 2012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주네스 뮤지컬 콩쿠르 2위에 올랐으며 다음 해 포르투갈 젊은 지휘자 콩쿠르에서는 공동 2위에 입상했다.

2017년에는 차웅이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개최하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올랐다. 이 도시가 낳은 전설적 지휘자 토스카니니를 기리기 위해 1985년부터 개최하는 콩쿠르다. ‘지휘자의 나라’ 핀란드의 전설적 지휘 교수 요르마 파눌라의 이름을 딴 파눌라 지휘 콩쿠르에서는 아드리엘 김이 2009년 3위에 올랐다. 파눌라 콩쿠르는 영국의 도나텔라 플릭 콩쿠르 등과 함께 유럽인에게만 참가 자격을 주고 있지만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도전해 결실을 거뒀다.

김은선은 2008년 스페인의 로페스코보스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해 오페라 지휘자로 인정받으며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 조력지휘자로 활동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 콩쿠르는 유감스럽게도 2018년 지휘자 헤수스 로페스코보스 타계 이후 열리지 못하고 있다.

2006년 프랑크푸르트 게오르크 솔티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성시연은 이듬해인 2007년 구스타프 말러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오르며 국제적 주목을 이어 갔다. 솔티 콩쿠르는 1952~61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를 이끈 명지휘자 솔티의 업적을 기리는 콩쿠르로 2004년 제임스 개피건, 2017년 발렌틴 우류핀을 우승자로 배출했으며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윌슨 응이 2017년 2위에 올랐다. 한편 2004년 창설돼 브장송 콩쿠르나 말코 콩쿠르에 비할만한 입지를 구축한 말러 콩쿠르는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주최한다. 첫해 구스타보 두 다멜을 우승자로 배출했고 옥사나 리니우가 3위에 입상했다. 2013년에는 라하브 샤니가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피텔베르크 지휘 콩쿠르에서는 1991년 함신익이 2위에 올랐다. 1979년 창설된 이 대회는 카토비체에서 5년마다 개최되며 1979년 클라우스 페터 플로어, 2012년 마르제나 디아쿤 등의 우승자를 배출했다.


콩쿠르, 지휘자 탄생의 새로운 경로

“콩쿠르는 자신을 알리고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다.” 임윤찬이 우승한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 무대를 지휘한 마린 올솝은 이렇게 말했다. 알토 가수 출신으로 지휘자가 된 나탈리 스튀츠망은 “콩쿠르는 지휘자로 커 가는 음악가가 자신을 경쟁자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지휘자는 전통적으로 ‘극장에서 성장하는 영역’이었고 지휘 콩쿠르를 통한 발견은 예외적인 코스로 치부됐다. 주로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지휘에 야망이 있는 음악도는 ‘레페티터(repetitor)’로 지휘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페라나 발레 연습 때 지휘자의 의도에 맞춰 성악진을 미리 연습시키는 직책이다. 여기서 출발해 조력지휘자나 부지휘자를 거친 뒤 작은 극장의 지휘자로 인정받고 차츰 큰 무대로 올라서는 것이 전통적 지휘자의 모델이었다. 19세기 지휘자의 전형인 구스타프 말러와 20세기 후반 지휘계의 게오르크 솔티 등이 이런 수순을 밟았다. 1959년생인 ‘21세기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도 레페티터로 출발해 지휘계에 입문했다.

지휘자 이승원의 2024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 우승 현장 © The Malko Competition


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 이런 흐름은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음악 교육의 전문화가 꼽힌다. 각국의 음대와 음악원이 실기 강조에서 벗어나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연주가들을 쏟아냈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의 구상을 수용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동반자’로 새 역할을 부여받기 시작했다. 이론으로 새롭게 무장한 단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지휘과’의 도입이 필요했고 이렇게 육성된 지휘자 지망생들을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현행 국제 지휘 콩쿠르의 대부분이 21세기 초반에 탄생한 것이 이런 새로운 흐름을 증명한다.

실력이 검증된 새 지휘자들에게 ‘발전된 악기’가 절실한 것도 지휘 콩쿠르가 각광받는 이유다. 자기 악기로 치열하게 연마할 수 있는 연주가와 달리 지휘자의 ‘악기’는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이며 그 품질은 천차만별이다. 적절한 성장 단계에서 적절한 악기가 제공되지 않을 경우 지휘자로서의 성장은 멈추게 된다. 이 때문에 크건 작건 대부분의 지휘 콩쿠르는 입상 특전으로 오케스트라 지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고 있다.


입상 후 특전은 성장의 기회

지휘 콩쿠르에 도전해 현장에 도착한 젊은 지휘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게 된다. 먼저 1회나 2회의 예선을 통해 경쟁자가 절반 또는 그보다 적은 수로 추려진다. 예선에서는 부여된 여러 과제곡 중에서 심사위원들이 부여하는 부분 일부를 단원들과 연습한 뒤 지휘한다. 연주 부분은 추첨을 통해 결정되거나 심사위원들이 임의로 선택해 요구할 수도 있다.

경쟁자의 숫자가 줄어든 준결선에서는 부여받은 악곡의 길이가 늘어난다. 각 단계를 거치면서 콩쿠르의 성격에 따라 협주곡·오페라 등 다양한 성격의 악곡이 부여되면서 협연자와의 호흡도 평가 대상이 된다. 콩쿠르 측이 위촉한 현대 창작곡 악보는 대체로 콩쿠르 중간 단계에서 주어진다. 새로운 흐름의 창작곡에 대한 해석 능력을 평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승이나 다른 레코딩의 영향을 배제한 순수한 악곡 탐구 능력을 알 수 있다.

결선에서는 대체로 긴 길이의 교향곡을 포함한 완성된 악곡을 지휘한다. 오케스트라가 긴 시간 동원되는 지휘 콩쿠르 특성상, 대체로 결선에서는 세 명 남짓한 적은 수가 경쟁하게 된다.

이승원이 올해 우승한 말코 콩쿠르에서는 열두곡의 과제곡이 부여됐다. 이승원은 “일반적인 공연에서는 한 프로그램을 수개월 동안 공부하는데, 이 콩쿠르를 위해서는 12곡을 두 달 동안 공부했다. 악보만으로 캐리어 하나가 찰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콩쿠르의 특징 중 하나로 그는 “리허설 때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착용했다”고 전했다. 리허설 중 단원들과의 소통 방식과 효율성도 심사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말코 콩쿠르는 입상 이후의 특전으로도 이름이 높다. 오슬로 필하모닉, 댈러스 심포니 등 무려 24곳이나 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가 주어진다. 젊은 지휘자의 성장에 필수적인 ‘최고의 악기’를 24개나 시험해 볼 수 있는 셈이다.

1961년 시작된 이탈리아의 기도 칸텔리 콩쿠르는 아직까지 한국인 입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 콩쿠르는 비평가와 음악 기자들이 뽑는 비평가상이 특징이다. 엘리아후 인발, 리카르도 무티, 피셰르 아담 등을 우승자로 배출했으며 1980년대 초반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낸 발터 길레센이 이 대회의 1965년 우승자다.

성시연이 입상한 구스타프 말러 콩쿠르는 이름처럼 말러 교향곡 한 곡이 과제곡으로 주어지지만 전곡을 지휘하지는 않는다. 2023년 경연에서는 말러 교향곡 7번 ‘밤의 노래’가 지정곡이었다.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는 2악장과 4악장 등의 발췌 부분과 하이든 교향곡 92번, 현대 창작곡 등이 연주됐고 세 명이 경쟁한 결선에서는 지정 협연자가 출연하는 스트라빈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말러 교향곡 7번 1악장이 과제로 주어졌다.

지휘자 이든(오른쪽)은 2021년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 특별상을 수상했다 © festival-besancon.com/Yves Petit


브장송 콩쿠르는 3개 대륙 오디션과 예술 에이전시 코칭이라는 특전이 특징이다. 2023년 대회에서는 중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에서 지원자가 두 대의 피아노가 연주하는 교향곡을 지휘하는 예선을 거쳤다. 우승자는 일드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메츠 국립 오케스트라 등 15개 오케스트라의 지휘 특전을 제공받는 한편 예술 에이전시 에메 파레의 코칭을 3개월간 받게 된다. 음악 비즈니스에서 효율적으로 성장하는 데 유리한 특전이다.

윤한결이 우승한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은 우승자가 수상 직후 ORF 빈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콘서트를 특전으로 받으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무대를 얻을 기회도 주어진다. 윤한결은 우승자 콘서트에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과 마리아 두에나스가 협연하는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차웅이 입상한 토스카니니 콩쿠르는 토스카니니의 이름답게 오페라에 큰 비중이 주어진다. 예선부터 베토벤 교향곡을 비롯한 관현악과 함께 아리아·중창·합창 등 이탈리아 오페라의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소화해야 한다. 2021년 시작된 로테르담 국제 콩쿠르는 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한 긴 일정으로 지휘자 지망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25년 대회의 경우 2024년 6월에 준결선을 통해 결선 진출자를 결정하며 이후 1년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2025년 6월에 결선이 열린다. 심사위원으로는 카리나 카넬라키스, 안야 빌마이어, 성시연, 막심 벤게로프, 톤 쿠프만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지휘자들이 참여한다. 최종 우승자 외 예선과 준결선 등 각 단계마다의 우승자를 시상하는 것도 이 신생 대회의 특징으로 꼽힌다.


유윤종 동아일보 문화 전문 기자

1996년부터 동아일보 음악 전문 기자로 일했고,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장과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사무국장을 지냈다. 『푸치니』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낭만주의 음악의 완숙기로 불리는 19세기 중반 이후의 대편성 관현악과 성악 음악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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