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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와의 대화] 하나의 소리를 위한 여정: 이병욱·최희준·이승원·홍석원

6월과 7월, 현재 음악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는 네 명의 지휘자가 차례로 성남을 찾는다. 우선 성남아트리움 ‘작곡가 시리즈’ 에서는 이병욱(6월 26일)과 최희준(7월 27일)이 온전히 베토벤으로만 꾸며진 프로그램으로 무대에 선다. 최근 말코 국제 콩쿠르 우승과 함께 세계 무대로 비상하는 이승원(6월 20일), 장르를 넘나들며 ‘믿고 듣는 음악’을 선사하는 홍석원(7월 18일)의 마티네 콘서트도 흔치 않은 프로그램과 더불어 놓쳐서는 안 될 순서다. 베토벤에 대한 탐구와 콩쿠르 뒷이야기 그리고 관객과의 교감까지, 공연을 앞두고 4인의 마에스트로와 나눈 이야기를 차례로 전한다.


남소연 성남문화재단 소통전략부 과장

1. 지휘자 이병욱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올라운더 마에스트로.’ 지휘자 이병욱을 표현한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인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또 교향곡과 오페라, 발레, 현대음악을 넘나드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청중의 신뢰를 받는 이병욱이 6월 26일 성남아트리움 ‘작곡가 시리즈: 베토벤’으로 관객을 만난다. 피아니스트 이혁,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의 가장 위대한 5번을 들려줄 이병욱의 베토벤 이야기.


이번 공연 프로그램에 대해 베토벤이 남긴 걸작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협주곡 그리고 가장 유명한 교향곡이 한 무대에 오르는 특별한 공연이 아닌가 합니다. 의외로 이 두 곡이 함께 연주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요. 너무 익히 잘 아시는 작품이라 조금은 부담도 있지만, 저 역시 이번 프로그램에 기대가 큽니다.


지휘자에게 베토벤과 그의 교향곡은 베토벤의 교향곡은 결국 모든 지휘자에게 ‘숙제 같은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반드시 잘 연주해야 하고, 누군가와 닮아서도 안 되죠. 세상에 존재하는 너무나 많은 해석과 연주 속에 나의 해석은 어떤지, 오케스트라의 해석은 어떤지, 항상 고민하게 되고 연주할 때마다 어려운 존재입니다.

베토벤은 인간적으로도, 또 음악적으로도 대단한 인물이었어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좌절할 상황을 이겨내고 작품 활동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 경이롭죠. 지금처럼 의료 기술이 발달한 세상에서도 불편할 장애를 이미 수백 년 전에 이겨내며 창작을 이어 갔다는 자체가 놀랍잖아요?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후대에 ‘이것이 교향곡이다’라고 확고하게 전해준 작곡가죠. 초등학생이 처음 학교에 입학해 당연히 덧셈, 곱셈을 배우듯이 지휘자들에게도 베토벤 교향곡 전곡은 필수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죠. 너무나 사랑하고 친숙하면서도 두렵기도 한 그런 음악입니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 교향곡은 보통 홀수 번호를 선호하는데 - 물론 저도 홀수 교향곡은 당연히 좋아합니다만 - 짝수 교향곡도 참 좋아해요. 최근에 4번, 6번, 2번을 자주 연주하기도 했고요. 짝수 번호들이 갖고 있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때론 익살적인 면을 좋아합니다. 삼중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도 빼놓을 수 없죠. 특히 피아노 협주곡은 2018년 백혜선 선생님과 협주곡 전곡 시리즈, 지난 연말 피아니스트 박재홍/인천시향과 하루에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는 ‘콘체르토 마라톤’ 시리즈를 진행한 적이 있어서 더욱 정이 가는 작품들입니다.


베토벤 교향곡 중 기억에 남는 연주 베토벤 교향곡의 명반은 정말 무수히 많죠. 그래도 애호가들에게 바이블과 같은 존재로 꼽히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빈 필하모닉의 음반은 언제 듣더라도 좋은 음반입니다. 카라얀의 후기 음반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자신이 창단한 오케스트라 모차르트와 연주한 베토벤도 좋죠. 더블링의 풍부한 사운드도 좋지만, 오케스트라 모차르트나 도이치캄머필하모닉처럼 소규모 편성이 주는 가볍고 쨍한 스타일, 활을 가볍게 쓰고 강약의 대비가 많은, 현대 악기지만 예스럽게 연주하는 스타일도 매력적입니다.


지휘자로서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 인성, 지휘 역량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은 성실과 겸손이 아닌가 해요. 음악 앞에 겸손하고, 내앞에 마주한 연주자들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죠. 기악 연주자가 악기를 소중히 대하듯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존중해야 합니다. 성실히 연습하고 관리해야 악기가 좋은 소리를 들려주듯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죠. 지휘자가 충실하게 악보를 연구하고 준비한 음악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100% 온전히 청중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제 구상과 실제 연주 사이의 간극을 조금씩 줄여 가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2. 지휘자 최희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현 국립심포니)와 전주시향 상임지휘자를 거쳐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인 최희준은 음악에 대한 완벽주의, 진지한 학구열로 언제나 돋보이는 음악적 성취를 이뤄 왔다. 7월 27일 성남아트리움 ‘작곡가 시리즈: 베토벤’의 두 번째 순서로 무대에 서는 최희준은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그리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교향곡 7번을 들려준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에 대해 베토벤 작품으로만 구성된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관객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베토벤이 남긴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인 이 곡은 솔로 부분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튜티 부분까지도 장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어, 마치 교향곡에 솔로 바이올린이 더해진 듯한 느낌이지요. 2부에 듣게 될 교향곡 7번은 열광적인 리듬과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를 기반으로 흥분되고 들뜬 분위기를 충실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비되는 2악장에서는 다소 침착하고 우울한 선율이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지휘자에게 베토벤과 그의 교향곡은 지휘자에게 베토벤 교향곡은 반드시 거쳐 가야만 하는 필수 교과서 같은 작품입니다. 그의 교향곡을 통해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 그리고 음악의 진정성을 배울 수 있죠. 베토벤은 고전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작품에서는 그만의 대담한 혁신과 독창성, 또 강렬한 표현력과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교향곡은 매우 논리적이고 구조적이어서 마치 튼튼하고 멋진 건축물을 보는 듯해요. 곡에 깃든 단단한 사운드는 오케스트라의 장점을 살리며 다채로운 변화 속에 깊은 감동을 전해줍니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 베토벤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교향곡 7번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제가 직접 지휘할 때는 물론이고 관객으로 객석에서 들을 때에도 큰 감동을 주는 곡이죠. 이 곡에서는 완전한 자유와 해방감이 느껴집니다. 작품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다시 얻을 수 있어서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다른 악장들과 대비를 이루는 2악장도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장송 행진곡처럼 어두운 분위기로 시작하는데 베토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죠.


베토벤 교향곡 중 기억에 남는 연주 너무나 존경받고 사랑받는 음반이 많다 보니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렵네요. 질문 중 ‘기억에 남는 연주’라는 이야기에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작곡가는 죽어서 작품을 남기지만, 과연 연주자와 지휘자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음반을 남기기도 하지만 평생 잊지 못할 연주를 남기기도 합니다.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연주는 후대에도 계속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7월 27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씨와 함께하는 이 연주가 큰 감동의 울림으로 청중에게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지휘자로서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 지휘자란 음악적인 부분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독일어로 지휘자를 ‘음악감독(Musikalische Leitung)’이라 부르기도 하는데요, 오케스트라를 잘 이끌어 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연주를 위한 리허설 과정은 대표적인 소통의 시간이죠. 지휘자는 단원들을 음악적으로 설득하고 제안하면서 최고의 가치 있는 음악으로 만들어 갑니다. 충분한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좋은 리허설이야 말로 성공적인 연주회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과 베토벤의 음악을 가지고 좋은 소통의 시간, 감동의 시간으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3. 지휘자 이승원


지난 4월, 덴마크 니콜라이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지휘자 이승원이 6월 마티네 콘서트 무대에 선다. 국내 간판 현악 4중주단인 노부스 콰르텟 전 멤버로 눈부신 성취를 이뤘던 이승원은 2018년 지휘자로 본격 전향하며 차세대 지휘자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현재 신시내티 오케스트라 수석부지휘자로 활동하시면서도 콩쿠르에 출전하셨는데요.

주요 콩쿠르의 나이 제한이 35세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해외 연주 기회를 찾기란 정말 쉽지 않다 보니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객원지휘 기회가 절실하죠. 특히 말코 콩쿠르는 주요 지휘 콩쿠르 중에서도 횟수와 내용 모두 압도적입니다. 타 콩쿠르의 경우 개최국 내 악단 지휘가 대부분인데, 말코는 무려 전 세계 24개 오케스트라 지휘 기회가 주어져요.

오슬로 필하모닉, 댈러스 필하모닉,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등 객원지휘만으로도 영광스러운 메이저 오케스트라가 가득하죠. 또 단시간 동안 많은 곡을 준비하는 콩쿠르 특성상, 참가 자체로 레퍼토리 확장과 음악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됩니다.


콩쿠르 경연곡은 후보곡들 중 당일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과정이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 같아요.

파이널까지 총 4차 과정이었어요. 1차에서는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중 연주 1시간 전 제비뽑기를 거쳐 17분의 리허설을 진행했고, 2차는 교향곡 세 곡 전 악장을 준비한 뒤 두 곡을 연주했죠. 저는 말러 5번이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해서 90%를 집중했는데, 막상 제 연주곡은 드보르자크와 차이콥스키였어요. 3차는 오전 세션에서 라벨과 드뷔시, 버르토크를 리허설 없이 관객 앞에서 공연했고, 오후에는 역시 사전 리허설 없이 닐센의 플루트 협주곡을 연주했지요. 악단 역시 여러 참가자들과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인데, 젊은 지휘자들에게 협조적인 태도로 진지하게 집중해 준 덕분에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비올라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친 후 지휘 전공으로 다시 학부 과정을 수학하셨어요. 여기에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비올라 종신교수직을 내려놓고 신시내티 오케스트라로 가신 것까지, 모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고민은 없었어요. 학부에서 다른 전공을 마친 뒤 석사로 지휘를 공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기 위주로 압축된 2년 커리큘럼이 제게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학부에서 지휘 기본기와 테크닉은 물론 오페라 코치, 오페라 피아노 반주, 이탈리아어, 발성 수업 등 지휘자에게 필요한 다양한 음악적 소양과 지식을 쌓아 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학부를 마친 뒤 석사 과정부터 조금씩 작은 지휘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당시 노부스 콰르텟도 세계무대 일정이 많다 보니 활동이 조금씩 겹치기 시작했어요. 두 가지 병행이 욕심임을 깨닫고 멤버들과 상의 후 지휘로 전향하게 됐죠.

종신교수 대신 계약직 부지휘자를 선택한 것도 전혀 고민하지 않았어요. 비올라를 사랑하지만, 지휘 커리어를 위해 프로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경력은 필수라고 판단했거든요. 오랫동안 살던 독일에서 기회가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독일은 해당 포지션이 존재하지 않고 오디션도 없어서, 온라인 공채 오디션 공고들을 살펴보다 신시내티에 지원하게 됐죠. 제게 미국은 완전히 낯선 세상이었지만, 130년 가까운 역사 속에 스토코프스키부터 길렌과 예르비까지 무수한 거장들이 거쳐 간 이곳이야말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마티네 콘서트는 드보르자크만으로 꾸며진 프로그램입니다. 또 바이올린 협주곡은 자주 들을 수 있는 곡은 아닌데요.

매해 하나의 국가 혹은 작곡가를 집중 조명하는 성남아트센터 마티네의 기획을 참 좋아해요. 영국을 주제로 했던 2022년 첼리스트 한재민 씨와 엘가를 들려 드린 무대, 지난해 11월 경기필과의 레스피기 프로그램도 좋았어요. 이런 기획 덕분에 저도 작곡가에 대해 한층 깊이 알아 가는 좋은 경험이 됩니다. 이번 마티네에서도 드보르자크 서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은 처음 지휘하는 작품이라 기대가 큰데요, 특히 이지윤 씨 협연을 고대하고 있어요. 예원학교 후배에다 독일 한스아이슬러 음대 동문이기도 하거든요. 제가 초보 지휘자로 학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시절에 바이올린 박사 과정이던 지윤 씨를 악장으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땐 제가 꽤나 엉성해 보이지 않았을까 싶네요(웃음). 8년 만의 만남인데다 지휘자-협연자로는 처음이라 정말 반가울 것 같아요.


지휘자로서 꼭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 또 변하지 않는 것도 있죠. 대표적으로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변함없이 필요한 덕목입니다. 백여 명 단원을 집중시키고 음악적 아이디어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단원 모두 프로 음악가의 인생을 살아왔고 곡에 대한 견해도 각기 다를 텐데, 통합된 하나의 소리를 위해서는 지휘자의 카리스마가 필수입니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겠죠. 그 옛날 카라얀 시절의 압도적인 아우라, 때로는 독재적이었던 느낌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여 함께 음악을 만들어 가는 ‘소통의 힘’이 필요해요. 아무리 완벽히 준비된 지휘자라 해도, 결국 실제로 그 음악을 연주하고 소리를 만드는 것은 오케스트라이니까요.


콩쿠르 이후 변화를 실감하시나요?

해외 활동 루트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동양인 지휘자로서는 결국 콩쿠르가 유일한 통로인 셈이거든요. 입상 이후 해외 활동 관련 연락이 정말 많이 와요. 콩쿠르 부상으로 주어진 오케스트라에서 일정을 묻는 연락은 물론이고, 그동안 꿈꾸던 해외 매니지먼트사들의 제안이 쏟아져 들어와 감사할 뿐입니다. 곧 런던에서 미팅이 있을 예정인데요, 아마 마티네 콘서트 무대에 설 때쯤이면 결정이 나지 않을까 싶어요. 마티네 콘서트에서 곧 뵙겠습니다!


4. 지휘자 홍석원 © 황필주


독일에서 공부하고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오랫동안 탄탄히 경력을 쌓아 온 홍석원은 현재 국내 음악계에서 관객과 극장 모두에게서 신뢰받는 지휘자 중 한 명이다. 광주시향 상임지휘자를 거쳐 7월 부산시향 예술감독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홍석원이 마티네 콘서트에서 함께할 음악 이야기를 미리 들어 본다.


7월 마티네 콘서트에서 말러와 야나체크를 연주하시죠. 프로그램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야나체크의 <타라스 불바>는 오래전 유럽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실연을 듣고 좋아하게 된 작품입니다. 당시 ‘이런 곡도 있구나’ 하고 너무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이후 이 곡을 지휘 콩쿠르 과제곡으로 만나기도 하고, 또 스위스 베른 극장과 인스브루크 극장에서 오페라 <영리한 암여우>와 <마크로풀로스 사건>을 지휘하며 야나체크만의 매력을 새삼 깨닫게 됐어요. 야나체크는 신기하게도 선대 작곡가들의 영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생전 처음 접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오케스트라에 까다로운 곡이 많고 대중성도 적다 보니 선뜻 메인 프로그램으로 선택하기는 쉽지 않지만, 마티네 콘서트 주제가 ‘보헤미아’라면 꼭 들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야나체크 작품을 흔히 만날 수 없다 보니 더 기대가 커요.

1부를 장식하는 말러는 보헤미아 지방에서 태어났다는 연결 고리를 가집니다. 저는 유사한 결보다는 대비를 강조한 프로그램을 선호하는데요, 말러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와 <뤼케르트 가곡>처럼 서정적인 작품으로 꾸며지는 1부, 이보다 더 강렬할 수 없는 2부 <타라스 불바>가 극적인 대비 속 조화를 보여 주리라 기대합니다.


<타라스 불바>는 야나체크의 대표작이지만 일반 관객에게는 아무래도 낯선 작품입니다. 미리 알아 둘 감상 포인트가 있을까요?

러시아 문호 고골의 소설을 기반으로 쓴 이 곡에서 야나체크는 세부적인 장면, 또 인물의 감정을 음악으로 아주 생생하게 표현했어요. 오페라는 아니지만 오페라처럼 연주하게 되는 작품이죠. 원작 내용을 미리 살펴보신다면 음악이 더 와 닿으리라 생각해요.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야나체크 특유의 아주 새롭고 유니크한 사운드로 가득합니다. 보헤미안의 토속적인 색채와 1900년대 초반 근현대 시기가 묘한 조화를 이루죠. 독일, 또 서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려 노력했던 그만의 독특한 맛이 살아 있어요. 완벽하게 이해하기보다는 그 낯선 느낌 자체를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


말러의 <뤼케르트 시에 의한 5개의 가곡>은 다양한 남녀 성악가들의 버전으로 사랑받는 곡입니다. 말러에게 가곡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성악가의 성별과 무관하게 남성과 여성 어떤 버전을 듣더라도 주옥같은 곡입니다. 말러의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교향곡을 많이 떠올리지만, 사실 그가 남긴 교향곡의 대부분이 가곡에서 출발했어요. 가곡은 말러가 가장 진솔하게 자기 생각을 담아낸 형식이었죠. 말러의 교향곡에서는 그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부분이 조금씩 느껴지는 데 반해, 가곡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낸 점이 더욱 말러답게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 무대에 여러 번 함께해 주셨습니다. 무대에서 체감하시는 성남아트센터 마티네만의 장점이 있나요?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는 ‘좋은 기획에 좋은 관객이 따른다’는 진리를 느낄 수 있는 시리즈입니다. 프로그램을 대하는 관객 여러분의 진지한 감상 태도와 더불어, 수준 높은 프로그램속에 관객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대에서 실감할 수 있죠. 다른 오전 공연에서 선뜻 <타라스 불바>와 같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진지한 프로그램으로 정통 클래식 관객의 저변을 확대하는 가장 모범적인 케이스가 아닌가 해요.


오페라 지휘에서도 활약하고 계십니다. 지휘자에게 오페라 지휘의 매력은 무엇인지요?

공동 협업이 필요한 종합 예술이라는 점에서 교향곡과는 다른 매력이 있죠. 음악과 무대, 의상, 미술, 연출, 연기 등 모든 요소들이 맞아떨어질 때의 카타르시스가 대단해요. 교향곡은 저 혼자 악단을 지휘하지만, 오페라는 다른 작업자들의 의견을 듣고 제 생각과 견해를 더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함께 극을 만들고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팀플레이의 매력이 가득하죠.


광주시향을 떠나 부산시향의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활동하시게 되는데요.

광주와 함께한 3년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단원들, 또 관객 여러분께서 보내 주신 과분한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부산시향은 전임 지휘자가 워낙 좋은 활동을 보여 주셔서 부담도 있지만, 부산의 색깔에 저의 색깔을 잘 더해 보겠습니다. 이미 부산의 클래식 수요와 수준은 탁월하지만,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저 역시 노력해야지요. 클래식 관객이 늘어나는 건 제게도 기쁨이니까요.


지휘자로서 꼭 작업하고픈 작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해내야 하는 작품들은 무조건 애정을 갖고 좋아하는 편입니다. 레퍼토리 확장에 대한 욕심이 있다 보니 50대까지는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해 보고 싶어요. 쇼스타코비치로 꾸몄던 지난 4월 교향악축제도 한국에서 거의 공연되지 않는 작품이라 즐겁게 연주했거든요. 자주 연주되지 않는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발굴하고, 오페라와 교향곡 작업도 지속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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