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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KDOG·칼럼] 거리에서 극장으로, 힙합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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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춤 예술 속에서 만나는 힙합


1999년, 세기말에 나온 드렁큰 타이거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라는 노래를 아시는지요? 이 노래는 첫 대목부터 “음악 같지 않은 음악을 이젠 모두 다 집어치워 버려야 해, 우리가 너희들 모두의 귀를 확실하게 바꿔 줄게 기다려”라는 도전적 선언을 펼치며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전에도 힙합 음악이 있었지만, 이 곡은 가사 그대로 기존의 음악과 다른 리듬 그리고 지껄이는 듯한 가사 전달 등 우리에게 새롭게 힙합을 알린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후 힙합은 또 다른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하며 이어졌고, 많은 마니아도 만들었습니다.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경우 대중에게 다가서며 힙합을 알린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힙합은 ‘음악’이 중심에 놓이지만 힙합에 따른 움직임, 힙합 춤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위키피디아에서는 힙합을 ‘1970년대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춤과 대중음악으로부터 파생된 거리문화’라 말합니다. 음악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다양한 움직임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힙합은 단순한 행위가 아닌 문화를 형성한 것이지요.

아! 그런데 여기서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브레이킹, 비보잉, 스트리트 댄스, 힙합 등의 용어일 텐데요, 스트리트 댄스는 힙합(hip hop), 락킹(locking), 왁킹(Waacking), 팝핀(Popping/Poppin), 하우스(house), 보깅(voguing) 등을 총체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비보잉, 브레이킹 등의 요소가 강한 힙합 춤을 스트리트 댄스로 지칭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힙합 춤이 스트리트 댄스 문화의 여러 요소를 보편적으로 포괄하면서도 그 개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기에, 대표성을 강하게 나타낸다 할 수 있지요.

‘힙합 춤’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리듬에 따른 즉흥적이면서 자유로운 움직임입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은 순간에 따라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텀블링·헤드스핀 등 고난도의 기술에서 보듯 철저하게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런 측면에서 기술적인 면에서는 기존의 무용보다 훨씬 내공이 필요한 춤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짧은 순간 응집력을 보이며 강한 개성을 드러내는 힙합 춤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것이 겨루기, ‘배틀’입니다.

배틀은 힙합 춤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는 힙합의 출발부터 이루어진 행위인데요, 거리문화이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을 뽐내려는 의식이 발생했을 겁니다. 열린 공간 속 즉흥적 행위를 통해 순간의 감정을 극대화하지만, 단지 겨룸을 넘어 힙합 춤이 지니는 융합적 상생을 보여주기도 하죠. 이 겨룸은 경연이 아닌 공동체적 신명을 불러일으키며 춤추는 이들뿐만 아니라 관객도 그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힙합, 대중 속에서 예술이 되다

힙합 춤은 조금씩 대중과 호흡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무대공연예술로서 힙합 춤의 수용과 확장은 그중 대표적인 모습이지요. 어찌 보면 힙합의 자유분방함, 특히 배틀 문화와 같은 특징은 무대공연예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힙합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서서히 예술적 가치도 확보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힙합 춤이 무대공연예술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초기작으로는 2000년대 처음 공연한 고릴라 크루의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와 익스프레션 크루의 <마리오네트>를 들 수 있습니다. 먼저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장르의 춤꾼이 경계를 허물고 사랑한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그리 복잡하지 않고 비보잉 그리고 배틀을 이야기 구조에 담아 역동적인 무대를 펼치는 작품이지요. 이 작품은 <난타>와 더불어 넌버벌 퍼포먼스 대표작으로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미국 브로드웨이 장기 공연이 이루어지는 등, 국내외에서 호평받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익스프레션 크루의 <마리오네트>도 힙합 춤의 확장과 새로운 가치를 만든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배틀이나 역동성보다는 서사 구조를 통해 춤을 이야기로 풀어 놓으며 뮤지컬 혹은 마술쇼를 보는 듯한 환상적 요소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거기다 정교한 춤사위에 미디어 아트 요소가 수용되는 등 동시대적 감각까지 더했는데, 2008년 첫 공연이 이루어진 이래 스트리트 댄스의 모범적 변용 사례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면적인 힙합 춤의 변용과 더불어, 어린 시절 스트리트 댄스를 하다가 무용계에 입문해 개성을 펼치는 인물도 자연스럽게 늘어났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김설진, 김보람을 꼽을 수 있겠네요. 많은 분들이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 9 시즌2> 우승자로 기억하는 김설진은 어린 시절 스트리트 댄스와 가수 백댄서 생활을 하다 현대무용으로 전환하면서 동시대 가장 개성 있는 현대무용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또한 김보람도 스트리트 댄스 그리고 백댄서 생활을 하다 ‘앰비규어스컴퍼니’라는 단체를 창단, <바디 콘서트> 등의 작품을 통해 예술성과 대중성을 넘나들며 한국 무용이 지니는 엄숙주의를 탈피해 신기원을 펼쳐 보였죠. 그의 작품을 본 일이 없더라도 이날치 밴드와 협업한 <범 내려온다>는 모르는 이가 드물 정도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설진과 김보람 모두 힙합 춤이 지니는 본능적 리듬, 현대무용의 개성적이며 실존적인 표현 양쪽을 탁월하게 표현한다는 공통점을 지녔죠.

이러한 흐름과 함께 힙합을 수용해 공연예술로 융합을 이루는 경우도 최근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공연 <HIP 합(合)>도 그 예입니다. 이 공연은 이 시대 가장 ‘힙’한 안무가에게 묻는 시대적 화두로서 ‘HIP’의 의미와 장르 간 협업을 지향하는 프로젝트인데, 대부분의 안무가는 힙합 문화를 수용해 이를 작품 속에 융화했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2021년 공연에서는 김설진·김보람·이경은 안무가의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 중 이경은의 <브레이킹>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현대무용과 스트리트 댄스가 어우러진 무대였죠. 힙합이 가지는 즉흥적인 표현이 서사적인 인과 관계 속에서 표출되었는데, 현대무용의 추상적 모호성과 스트리트 댄스에서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적 흥취가 조화를 이루며 긴 호흡으로 관객과 소통했습니다.

최근 이경은 안무가는 지난 5월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현대무용과 스트리트 댄스 10명이 어우러진 무대 <올더월즈>를 선보였는데요, 안무가가 펼치고자 한 것은 ‘다차원의 세상으로 끝없이 변신하는 초감각의 몸, 춤추는 자유, 온 세상이 놀이터’란 점이었습니다. 결국 춤은 감각적이지만 의식의 표현이고, 일상과 실존적 감각 속에서 춤추는 이들의 협업과 개성을 드러내는 속에 ‘살아 있음을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화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대무용 속에 나타난 힙합을 바라볼 때에는 ‘작품의 서사 구조 속에서 내면의 분출이 어떻게 실존으로 나타나는지’ 함께 사유하면 어떨까 합니다.

스트리트 문화는 우리 일상 속에 조금씩 더 쉽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댄싱9>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등의 방송 프로그램은 물론이거니와 2024 파리 올림픽에 ‘올림픽 브레이킹’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또 다른 확장을 이어 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이제는 서울예대, 백석예대, 서경대, 한국체대 등에서 실용무용 신입생을 모집하는 등 외연 역시 더욱 넓어지고 있습니다. 본질을 간직하면서도 다원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를 만들며 대중과 호흡하는 힙합 문화의 새로운 진화를 앞으로도 기대해 봅니다.


김호연 춤평론가

꼼꼼한 관객의 입장에서 춤평론을 쓰는 춤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문화연구소 케이코뮌 연구위원으로 한국 공연예술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근대무용사』 『전환기 무용문화의 시대적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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