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야기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 슈퍼 지식재산권(IP)의 시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상 작품이 여럿 쏟아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감명받았다면 원작을 읽으며 음미해 보는 건 어떨까. 최근 화제가 된 영상 작품의 원작을 소개한다.
듄 신장판(전 6권)
‘듄친자(듄에 미친 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국내 관객 150만 명을 동원한 영화 <듄 파트 2>를 봤다면 미국 작가 프랭크 허버트가 1965년부터 펴낸 원작을 읽어 보는 걸 추천한다. 원작은 6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라 영화가 미처 담지 못한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원작에서 환각 물질인 스파이스에 노출된 주인공 폴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게 되고, 확신에 차 원수인 하코넨 가문에 복수를 시작하는 장면이 압도적으로 서술된다. 두려움 없이 전쟁을 이끌며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폴의 속마음도 원작엔 깊게 담겼다. 원작을 읽다 보면 그릇된 ‘영웅주의’가 인류를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프랭크 허버트 지음 |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4,304쪽 | 120,000원
삼체(전 3권)
넷플릭스 세계 1위(TV 부문, 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른 드라마 <삼체>의 원작은 중국 작가 류츠신이 2013년부터 쓴 작품이다. SF계의 노벨문학상으로 통하는 휴고상을 받고 900만 부 이상 팔렸을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원작에서 중국 문화대혁명(1966~76)의 비극에 대한 묘사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류츠신은 문화대혁명으로 살해된 한 지식인의 모습을 묘사하며 “핏줄기만이 유일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붉은 뱀처럼 천천히 구불구불 기어가다 단상 끝에서 한 방울씩 아래에 있는 빈 상자 위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고 썼다. 광기에 사로잡힌 믿음이 불러온 끔찍함을 처절하게 그렸다는 점은 크게 인정할 만하다.
류츠신 지음 | 이현아·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1,972쪽 | 67,000원
가여운 것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가여운 것들>을 봤다면 스코틀랜드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가 1992년에 쓴 원작에 눈길이 갈 터다. 사망한 성인 여성의 몸에 태아의 두뇌를 결합해 탄생시킨 피조물 ‘벨라’라는 파격적 소재는 영화와 원작 모두 동일하다. 다만 원작에는 여성을 억압하는 시대상이 강렬하게 담겼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해 여성에 대한 시선이 보수적이었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또 제국주의 이면의 빈부 격차 역시 신랄하게 풍자한다. “전쟁이 끝난 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굶주리게 됐다”는 문장을 읽다 보면 소설만이 지닌 매력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앨러스데어 그레이 지음 | 이운경 옮김 | 황금가지 | 476쪽 | 18,000원
동조자
박찬욱 감독이 제작·각본·연출 전 과정을 지휘한 미국 HBO 드라마 <동조자>의 원작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과 미국에서 스파이로 활동한 북베트남 장교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는 스파이, 고정 간첩, CIA 비밀 요원, 두 얼굴의 남자”라는 원작의 첫 문장은 이중생활을 힘들어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실감 나게 살렸다. 특히 원작은 공산당을 모독하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베트남에서 출판되지 못했다. 베트남 출신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이 겪은 미국 사회의 차별을 녹여 2016년 미국 퓰리처상을 받은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680쪽 | 18,000원
글 이호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문화부에서 문학, 출판,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 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콘텐츠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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