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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KDOG·아티스트 토크] 안무가 보티스 세바: 세상에 맞서 싸우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 Helen Maybanks


런던 출신의 안무가 보티스 세바(Botis Seva, 1991~)의 힙합 댄스 시어터 <블랙독>은 세상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춤으로 건네는 특별한 위로이자 헌사다. 힙합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안무를 창조하는 세바는 <블랙독>으로 세계 공연계에서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올리비에상을 수상(2019)한 데 이어, 글로벌 브랜드 샤넬이 각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어 갈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CHANEL Next Prize)의 첫 수상자(2022) 선정 그리고 영국의 대표 무용 공연장 새들러스 웰스의 협력예술가 합류(2024~)등 현재 가장 각광받는 아티스트임을 증명하고 있다. <블랙독> 한국 초연을 앞두고 들어 보는 세바의 예술과 <블랙독>에 관한 이야기들.


남소연 성남문화재단 소통전략부 과장

© Rick Guest


처음 ‘춤’에 빠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예술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나요?

열다섯 살 때부터 무용을 시작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제가 다닌 중학교에 무용과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외부 안무가들의 초빙 수업이 정기적으로 진행되곤 했죠. 예를 들면 힙합 댄스 컴퍼니 아방가르드 댄스(Avant Garde Dance)의 토니 아디건(Tony Adigun) 같은 안무가의 수업이었습니다. 이후 학교에서 열리는 경연 대회에 참가하고 다양한 지역댄스 플랫폼에서 소규모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죠.

돌아보면 제가 무용을 시작한 계기는 사실 음악입니다. 춤을 추기 전까지는 지역 청소년 클럽에서 랩을 하고 그라임 뮤직(Grime music)에 빠져 있었거든요. 힘든 학교생활, 선생님들과의 갈등과 제약 속에서 음악은 제게 자유를 주었고 춤은 좌절감을 표출하는 수단이 되어 주었죠.


힙합 무용단 파 프롬 더 놈(Far From The Norm, 이하 FFTN)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어떻게 자신의 무용단을 만들게 되었나요?

FFTN은 런던 대거넘(Dagenham)의 청소년 클럽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시작했습니다. 제가 워낙 다양한 아티스트와 스타일, 언어 교류에 관심이 많아서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비공개 워크숍 세션에서 함께 배우고 연습하곤 했어요.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짧은 작품들을 지역 스트리트 댄스 신에서 선보였는데, 레안 페로(Leanne Pero) 주최로 크로이던의 페어필드 홀스(Fairfield Halls) 극장에서 열린 스트리트 댄스 대회 ‘킵 잇 무빙(Keep It Moving)’ 참가가 FFTN의 첫 공연이었죠.

현재 FFTN은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와 출신의 무용수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거나 현대무용 학교 출신 무용수, 또 일부는 저처럼 1년 과정의 뮤지컬 시어터를 공부한 무용수도 있죠. 단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감정 등을 의견으로 제시하거나 직접 안무를 창작하면서 창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성남아트센터에서 한국 초연으로 선보일 <블랙독(BLKDOG)>은 일단 타이틀이 인상적입니다. ‘검은색’과 ‘개’에 담긴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블랙독>은 ‘우울증(depression)’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제목입니다.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의 마음이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트라우마와 슬픔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펴보는 작품이기도 해요. <블랙독>은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을 압축한 에너지이고, 관객과 무용수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 감정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 마주한 불편하고 복잡한 감정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맞서 싸우고 있는 ‘블랙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주제에 깊이 파고들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이 공연은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작품입니다. 초반에는 나이가 들어 가면서 세월을 아쉬워하는 아티스트의 치열한 내면을 탐구하는 내용이었지만, 고민 끝에 그보다는 ‘인간이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을 얼마나 많이 억압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어요. 어른이 되어 대처해야 하는 문제 중 상당수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었음을 이해하기 위해 캐릭터의 어린 시절을 더욱 파고들었죠.

궁극적으로는 시적인 힘, 즉 젊은 세대가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블랙독>은 2018년 새들러스 웰스에서 선보인 뒤로 계속 발전시켜 왔는데,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작품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많아지면서 내용에 약간의 변화도 생겼죠. 관객들이 공연에 와서 직접 경험하고 다양한 영감을 받아 갈 수 있다면 좋겠네요.


작품이 조금씩 변화하게 된 이유가 궁금한데요.

제 아들이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1년 동안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렌펠 타워(Grenfell Tower) 화재(2017)로 사람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코로나19 팬데믹이 펼쳐졌죠. 2020년 흑인 청년 아모드 아베리(Ahmaud Arbery)가 조깅 중 억울하게 총격으로 사망했고 뒤이어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건이 일어나면서 ‘Black Lives Matter’로 대변되는 흑인 인권 운동이 격화되었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후 4년 동안 이 모든 일이 벌어졌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일부일 뿐입니다. 팬데믹 속에 갇혀 지내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지켜보는 동안, 그 상황에 분노하지 않기란 힘들었어요. 그러다 문득 <블랙독>을 다시 살펴보았죠. 팬데믹 이전에는 <블랙독>에 대해서 의구심이 많았지만 이제는 관객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제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억눌러 왔던 과거를 마주하는 세계로 여러분을 데려갈 수는 있죠.


작품의 창작은 어떻게 시작되나요?

모든 과정은 ‘왜 이것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명확한 의도에서 출발합니다. 저는 모든 작품이 소명이라고 믿어요. 마치 저를 가만히 두지 않는 어떤 느낌이나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확신이라고 할까요? 오랜 시간 조사하고 대화하고 관찰하면서 연습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죠. 작업 과정에서는 같은 공간에 있는 아티스트들과 많은 의견을 나눕니다. 다들 자기 이야기를 갖고 작품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저 나만의 생각이 아닌 무대 위 모든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죠.


창작 과정 속에서 얻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예술은 올바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주변에는 최선을 다해 삶을 헤쳐 나가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어요. 서로에게 더 많은 사랑과 겸손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블랙독>을 통해 관객들이 무엇을 느끼기를 바라나요?

<블랙독>은 다양한 기억을 바탕으로 미로 같은 경험을 선사합니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스토리를 파악하고 누군가는 그저 이미지의 연속이라고 느낄 수도 있죠.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어 가느냐는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금만 더 들여다본다면 말이죠.


무대에서 어떤 점에 집중하면 좋을까요?

빠르게 흘러가는 고난의 여정과 성찰의 순간들입니다. 일렉트로닉과 힙합을 바탕으로 롤러코스터 같은 짜릿함을 선사하는 음악, 힙합 스타일의 안무도 빼놓을 수 없죠. 스트리트 댄스 스타일 속 형태와 기초를 가지고 놀며 자유로운 형태의 언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투어 공연에서 가장 기대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사람들과의 만남입니다. 평소 극장에 잘 가지 않는 분들이 <블랙독>을 직접 경험해 보시면 좋겠어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 대단할 것 없는 환경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작품입니다. 공연 애호가들이 많이 보러 오시는 것도 당연히 좋죠. 사람들이 무대를 보면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공감하는 것이 제겐 중요해요.

둘째는 작품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보는 겁니다. 이번 기회에 공연을 라이브로 지켜보고 계속 다듬으면서, 작품이 가진 가능성을 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 ‘최종 완성’ 버전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요.


2017년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로 첫 내한 당시 <ZEN 20:20>이라는 작품을 선보이셨지요. 한·영 문화교류 차원에서 현장 워크숍을 통해 한국무용수를 선발하고 작품을 만들어 가는 색다른 협업이 많은 관심을 모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의 기억과 이번 내한에 대한 기대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한국 무용수들이 열심히 참여하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집중력이었죠. 사람들은 조용하면서도 굉장히 정중했고요. 저도 내성적인 사람이라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을 좋아해서 이번에 동료들과 한국을 다시 찾을 날이 매우 기대됩니다. 2017년에는 우리의 작품을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력해 만드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면, 이번 내한 공연은 한국 관객에게 <블랙독>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또다른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신가요?

영화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라이브 공연으로는 어렵지만 영화로는 구현 가능한 부분들, 그 가능성을 더욱 깊이 탐구하고 싶습니다. 음악 작업도 다시 시작하고, 아이들을 위한 책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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