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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2] 팝업 스토어 전성 시대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은 공간의 한 층을 전부 디지털 아트를 상영하는 전시 공간으로 할애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 시몬스

  ‘땡처리’ ‘오늘만 이 가격!’ 길을 걷다 보면 글씨가 커다란 현수막을 내건 단기 임대형 매장을 종종 마주치게 된다. 보증금이나 권리금 없이 계약 기간만큼의 금액을 선납하고 공간을 임대하는 계약을 부동산 은어로 ‘깔세’라고 한다. 임대료를 미리 깔아 놓고 장사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기업과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팝업 스토어도 일종의 깔세 점포다.

 

리테일 미디어로서의 팝업

건물에 공실이 생기면 건물주는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을 맺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임대 기간을 최소 10년 동안 보장하며, 임대료 또한 연 5% 이상 상승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된다. 그런데 깔세의 경우, 주변 시세와 상관없이 건물주는 부르는 만큼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 공실에 대한 리스크만 감수한다면 장기 임대보다 훨씬 수익률이 높아진다. 성수동 곳곳 빈 점포 1층에 ‘팝업 임대’ 현수막이 나부끼는 이유다.

그렇지만 ‘땡처리’ 깔세와 팝업 스토어를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영길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은 팝업 스토어가 공간과 매체가 결합된 채널이라는 점에서 ‘리테일 미디어’라고 이야기한다. 기업이 별도의 광고료를 지 불하지 않아도 팝업 스토어에 방문한 이들은 각자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샷이나 영상을 업로드한다. 개인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페이스북, 틱톡 등이 흥미로운 팝업 소식을 알리는 광고판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팝업 스토어의 공식 오픈일 전날 열리는 ‘VIP 데이’에 초청되는 이들은 주로 인플루언서들이다. 온라인상에서 파급력이 높은 이들의 인증샷이 팝업 스토어의 흥행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팝업 스토어를 전문적으로 큐레이션해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주말에 어디 갈까?’ 혹은 ‘성수동 추천 데이트 코스’ 같은 제목으로 팝업 스토어 여러 곳을 큐레이션해 소개하는 콘텐츠를 보면 사진 속 이미지가 인스타그래머블할수록 ‘좋아요’ 수도 늘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이라는 신조어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라는 의미다. 전 세계에서 1분당 65,000여 장의 이미지와 동영상이 올라오고 있는 가운데 시선을 잡아끄는 이미지에 붙이는 일종의 수식어인 것이다. 신제품을 테스트하고 구입할 수 있는 단기 매장의 형태를 넘어 팝업 스토어가 미술관의 전시 형식을 차용하면서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도 범람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팝업 스토어는 미술관 전시 형식을 채택해 신제품 테스트와 구매는 물론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도 중요시되는 트렌드로 나타난다

 

2021년 탬버린즈는 핸드크림 ‘더 코쿤 컬렉션’ 출시를 기념해 거대한 누에 형상이 꿈틀거리는 키네틱 오브젝트를 전시장 한가운데에 설치했다. 한편 2022년 2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운영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은 침대 없는 침대 브랜드 팝업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샤퀴테리 숍을 콘셉트로 선보인 굿즈도 인기였지만, 공간의 한 층을 전부 디지털 아트를 상영하는 전시 공간으로 할애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단순한 동작을 반복해서 보여 주는 브랜드 캠페인 영상 시리즈를 감상하며 ‘멍 때리기’를 제안한 것이다. 시몬스는 이를 통해 팬데믹으로 지친 현대인에게 힐링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팝업 스토어는 각종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전시 공간을 연출함으로써 대중들에게 단순 ‘소비’가 아닌 일종의 ‘문화’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미술관 전시는 난해한 예술 작품으로 가득하지만 팝업 스토어 전시는 쉽고 재미있으며 셀카가 잘 나오는 포토 스폿까지 갖추고 있으니 금상첨화인 셈이다.

 

제주 맥주는 광장시장에서의 ‘제주위트 시장-바’가 화제가 되자 더현대 서울로 장소를 옮겨 팝업을 이어 나갔다 © 제주 맥주

 

팝업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

한정된 기간에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희소성은 MZ세대의 발길을 팝업 스토어로 이끈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는 ‘Z세대 트렌드 2023’에서 팝업 스토어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주변의 다른 공간을 방문해 시간을 보내는 현상에 주목하며 ‘0차 공간’이라는 키워드를 일종의 공간 트렌드로 소개했다. 팝업 스토어가 열리는 장소 주변의 볼거리 또한 대중들은 팝업 스토어를 갈지 말지를 결정짓는 요소로 고려한다는 뜻이다. 성수동이나 더현대 서울이 팝업 스토어를 위한 최적의 장소로 각광받는 이유가 0차 공간을 통해 설명이 된다. 성수동에 카페, 맛집 등 들를 만한 공간이 많을수록 팝업 스토어는 활개를 친다. 마찬가지로 2021년 오픈한 더현대 서울 또한 거대한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를 조성하고 층마다 인기 있는 F&B 브랜드를 큐레이션함으로써 기존 백화점의 문법을 탈피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한달 동안 성수동에서는 53건, 더현대 서울에서는 160여 건의 팝업이 열렸다.

팝업 스토어에서 ‘체험’이 중요하다고 했을 때, 시각은 물론 오감을 골고루 자극할수록 더욱 강렬한 인상이 뇌리에 남는다. F&B 브랜드가 팝업 스토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22년 성수동 프로젝트 렌트에서 열린 가나 초콜릿 하우스는 1975년 가나 초콜릿이 국내 첫 출시되었다는 점에서 착안해 1675년 영국 사교 클럽이 모이던 초콜릿 하우스라는 콘셉트로 조성한 팝업 공간이었다. 유명 셰프들이 제안하는 가나 디저트 페어링 바를 운영하는 한편, 가나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DIY 클래스를 마련해 화제가 되면서 이듬해 부산에서도 동일한 팝업 공간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제주 맥주는 팝업 스토어의 성지인 성수동을 벗어나 광장시장이라는 의외의 장소에서 ‘제주위트 시장-바’를 열었는데 장소성을 십분 활용해 로컬 콘텐츠를 촘촘하게 엮어 낸 기획이 돋보였다. 광장시장 상인들과 협업해 빈대떡과 약과 등 일명 ‘할매니얼’ 트렌드를 콘셉트로 한 꼬치를 선보여 제주 맥주와 페어링을 제안한 것은 물론, 시장 내 다른 점포의 음식을 자유롭게 구입해서 제주 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제주 맥주 팝업 스토어 또한 3주간 5만여 명이 몰리면서 화제가 되자 더현대 서울로 장소를 옮겨 팝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떠들썩한 잔치가 끝난 자리에 남겨진 폐기물은 팝업 스토어의 어두운 이면이라 할 수 있다. 모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10평 내외의 매장을 철거하는 데 보통 1톤가량의 폐기물이 발생한다고 한다. 팬데믹 이후로 지속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팝업 스토어에서 한번 사용하고 철거되는 각종 건축 자재를 어떻게 하면 재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2022년 매일유업은 ‘어메이징 오트카페’ 팝업 스토어에서 버려지는 볏짚을 활용해 인테리어 구조물과 의자를 만들었다. 슈퍼말차는 디자인 스튜디오 포스트스탠다즈와 협업해 팝업 스토어의 구조물을 조립과 해체가 용이한 모듈 시스템으로 대체했다. 스테인리스 모듈로 기본 구조를 세우고 슈퍼말차를 상징하는 초록색 타폴린 천으로 벽면을 구획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브랜드의 노력은 팝업 스토어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슈퍼말차는 디자인 스튜디오 포스트스탠다즈와 협업해 팝업 스토어의 구조물을 조립과 해체가 용이한 모듈 시스템으로 대체했다

 

매일유업은 ‘어메이징 오트카페’ 팝업 스토어에서 버려지는 볏짚을 활용해 인테리어 구조물과 의자를 만들었다 © 매일유업


서민경 디자인 칼럼니스트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겸임 교수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한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디자인과 큐레이팅을 전공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을 거쳐 월간 <디자인>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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