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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1] 아트 마케팅의 새로운 전략과 과제: 아트슈머라는 이름의 소비 주체

아트 마케팅 영역에서 최근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아트슈머’다. 예술(art)과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인 아트슈머는 소비하는 행위를 통해 미학적 경험과 문화적 만족감을 얻는 이들을 가리킨다. 아트 컬렉터들이 예술품을 두고 취향 소비와 투자의 맥락에서 접근하는 것과 달리, 아트슈머는 일상에서 즐기는 ‘경험’의 대상으로 예술을 바라본다. 요즘 뜨고 있는 아트슈머 트렌드를 자세히 살펴본다.


<반클리프 아펠: 시간, 자연, 사랑>전 © 최용준, 반클리프 아펠


넘실대는 아트 컬래버레이션 바람

지난 2022년 한국에 상륙한 글로벌 아트 페어 ‘프리즈(Frieze)’는 국내 아트 신을 새롭게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기간에 맞춰 기업과 브랜드는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을 발표하고 갤러리가 밀집한 삼청동과 한남동은 파티로 들썩인다. 더불어 일반 대중들의 예술에 관한 관심도 뜨거워지는 중이다. 같은 해 한국 미술 시장 거래가 사상 처음 1조 시대에 진입했다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발표가 있었다. 이른바 ‘부자들의 놀이터’로만 여겨지던 미술 시장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젊은 층이 아트 컬렉팅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투자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구매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트 컬렉터의 연령층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면서 예술을 일상 속에서 즐기는 ‘아트슈머’ 또한 아트 마케팅의 주요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다. 1987년 설치미술가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가 자본주의 사회에 던진 ‘I shop, therefore I am(나는 쇼핑한 다, 고로 존재한다)’ 메시지는 현대 사회에 들어와 ‘I experience, therefore I am(나는 경험한다, 고로 존재한다)으로 치환된다.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아트슈머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해 기업과 브랜드들도 작가와의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나 전시를 기획하는 데 적극적이다.

지난 1월 룰루레몬은 청담동, 이태원에 이은 세 번째 스트리트 스토어로 ‘명동 타임 워크 스토어’를 오픈했다. 이를 기념해 룰루레몬이 추구하는 땀 흘리는 삶, ‘스웻라이프(the sweat life)’를 즐기는 사람들을 감각적으로 담은 그래픽 아티스트 오요우(Oyow)의 일러스트 작품을 매장 내에 전시했다. 코오롱FnC가 전개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는 2022년 제주에 플래그십스토어 ‘솟솟리버스’를 오픈하고 지속 가능성을 테마로 한 작가들과의 협업 전시를 이어 오고 있다. 이곳에서 5월 2일부터 10월 24일까지 개최되는 열한 번째 전시 <머들머들(Muddle Mudle)>은 오상민 작가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전시명에서 첫 번째 ‘머들(Muddle)’은 우리말로 ‘뒤죽박죽’이라는 의미이고, 두 번째 ‘머들(Mudle)’은 돌무더기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제주의 돌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코오롱스포츠의 바람막이와 텐트 부자재를 결합해 조명 작품을 완성했다.


룰루레몬 ‘명동 타임 워크 스토어’에 설치된 오요우 작가의 일러스트 © 룰루레몬


도시락 프랜차이즈 한솥의 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2월 청담동 본사 사옥1~2층을 한솥도시락 직영 점포와 오픈형 아카이브 공간으로 구성한 한솥 청담 플래그십으로 리뉴얼한 데 이어, 지하 1층 공간을 젊은 예술가를 위한 아트 플랫폼 ‘한솥아트스페이스’로 할애했다. 이곳에서 6월 18일부터 7월 28일까지 열린 <더클로징 서클(The Closing Circle)>은 지구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전시였다. ‘지구 곁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이라는 전시 부제에 부합하도록 김지선, 류종대, 이우재, 이혜선 등 11팀 작가들의 80여 점의 친환경 작품을 모아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사례는 기업의 메시지를 아트슈머들에게 간접적으로 발신하는 일종의 아트 마케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코오롱 솟솟리버스 제주에서 열리는 <머들머들>전 © 코오롱FnC


예술에 진심인 기업과 브랜드

백화점도 전시 영역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양새다. 현대백화점은 ‘예술로 가득하다’는 의미를 담은 ‘더 아트풀 현대(The Artful Hyundai)’를 올해의 아트 마케팅 캐치프레이즈로 정할 정도로 아트슈머들에게 공들이고 있다. 더현대 서울에 위치한 전시 공간 ‘알트원ALT. 1’은 지난 5월 누적 유료 관람객 수가 100만을 넘어섰다. <앤디 워홀: 비기닝 서울> <폼페이 유물전> 등 대중 친화적 전시를 유치해 온 이곳에서는 9월 18일까지 <서양 미술 800년展>이열린다. 더현대 대구도 2022년 리뉴얼을 통해 전시 공간을 대폭 강화했다. 기존 면적 1,267㎡(약 383평)에서 5,047㎡(약 1,530평) 규모로 문화·예술 관련 시설 면적을 늘린 것이다. 백화점 9층 전체를 할애한 ‘더 포럼 by 하이메 아욘’은 더현대 대구에 방문했을 때 빼놓지 않고 들러야 할 명소로, 아티스트 하이메 아욘(Jaime Hayon)이 디자인한 카페와 실내 광장, 조각 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 자리한 ‘더 스퀘어’는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며 전 세계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근접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오픈 공간으로, 올해에는 설치 미술 작가 루크 제람(Luke Jerram)의 ‘달의 미술관(Museum of the Moon)’을 설치했다. 고해상도로 달을 촬영한 NASA의 이미지를 50만 분의 1로 축소해 지름 6m 크기로 구현한 이 작품은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우주의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잠실 롯데월드타워 7층에 위치한 롯데뮤지엄은 7월 12일부터 10월 13일까지 <다니엘 아샴: 서울 3024-발굴된 미래>전을 개최하는 중이다.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이처럼 전시 운영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바로 문화·예술 콘텐츠가 아트슈머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고객의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매출이 늘어나는 것이 기정사실임을 고려했을 때 고개가 끄덕여진다.


더현대 대구 ‘더 스퀘어’에 설치된 루크 제람 작가의 ‘달의 미술관’ © 현대백화점(좌) / 더현대 대구 ‘더 포럼by 하이메 아욘’ © 신경섭, 현대백화점(우)


한편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들도 백화점이나 플래그십 스토어가 아닌 전시라는 통로를 경유해 대중을 만난다. <반클리프 아펠: 시간, 자연, 사랑>전이 성수동 디뮤지엄에서 지난 4월까지 열렸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는 5월부터 두 달간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전이 개최되었다. 지난해에는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을 기념한 전시가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기도 했다. 팬데믹 시기에 메타버스가 한창 이슈몰이를 할 때 구찌가 잘파세대(Zalpha Generation, 10~20대)를 공략하기 위해 제페토와 손을 잡았던 것처럼, 예술을 향유하는 아트슈머들을 잠재적 고객으로 상정하고 전시를 매개로 브랜드 이미지를 학습시키는 것이 오늘날 럭셔리 브랜드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여러 사례를 살펴봤을 때 아트슈머 트렌드가 나날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수년 내에 쉽게 사그라들 유행이 아닐 듯싶다. 그에 따라 기업과 브랜드도 일회성 전시가 아닌 자신들의 철학에 맞는 아트 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 그 끝없는 이야기>전 © 불가리, 국제갤러리


서민경 디자인 칼럼니스트

텍스트 공방 대표. 디자인과 공예 영역에 걸쳐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한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디자인과 큐레이팅을 전공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을 거쳐 월간 <디자인>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겸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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