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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예술] 장애·비장애예술인의 경계를 지우다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에 불어온 교양 열풍은 한두 가지로 말할 수 없다. 노자, 장자, 공자 등 옛 동양 철학에 대한 붐이 일었고, 머리와 혀가 함께 즐거워야 한다는 이유로 와인 광풍도 불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성공적으로 정착한 교양은 아트로 뭉뚱그려 대표되는 시각 예술인 듯싶다. 아트에 대한 사랑은 미술사 공부부터 블록버스터 전시 관람, 갤러리 투어를 거쳐 이제 컬렉팅에 이르는 산업으로 발전 중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난 대표적인 예가 장애예술이다. 장애예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견하기에 국내 상황이 여의찮은 탓이 크다.

 

주디스 스콧의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설치 장면, 2017 © Images courtesy of Venice Biennale. Photos by Andrea Avezzù and Italo Rondinella.


장애와 예술이 엮이는 네 가지 경우의 수

지난 호 글에서는 장애예술과 장애인예술 간의 모호함을 말하면서, 장애예술인이 이끌어 가는 장애인예술이란 용어가 한국에 고착화된 상황에 대해 의문을 던진 바 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쓰이는 용어를 살펴보면 장애예술이 훨씬 보편적이다. ‘disabled arts’라는 단어가 명확히 있을 정도니까. 반면 장애를 가진 예술가의 활약은 ‘disability in the arts’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장애를 둘러싼 예술 활동을 폭넓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장애예술이란 용어로 통일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필자의 개인적인 논지이므로, 비판과 의견은 환영한다.

그런데 용어를 하나로 정리한다고 복잡다단함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장애예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해 또박또박 말하기란 결코 쉽지않다. 지난 2013년 미국 휘트니 뮤지엄이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바꿀 때 참고했던 핵심 문장이 아직도 기억난다. “예술의 역사를 단선적으로 바라보는 게 훨씬 더 손쉬운 방법일지라도 그건 휘트니의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간단하게나마 살펴보려면 단선적인 시선으

로 회귀함을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장애와 예술이 엮이는 경우의 수를 나열해 적절한 예를 들며 조금씩 정리해 보려고 한다. 예술의 경우에는 장애예술과 비장애예술, 장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일단 이렇게 나누면 총 네 가지 경우의 수를 추측할 수 있다. 비장애인의 비장애예술, 장애인의 비장애예술, 장애인의 장애예술 그리고 비장애인의 장애예술이다.


비장애예술과 장애예술의 차이

비장애인의 비장애예술은 너무나 간단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 그 자체다(장애예술이라는 레이블을 굳이 붙이지 않는다면!). 오감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예술적 감흥을 주는 예술이 모두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의 비장애예술과 장애인의 장애예술을 말하려니 바로 의문점이 떠오른다. ‘비장애예술과 장애예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차이는 보편적으로 뚜렷한가?’ 약간의 애매모호함을 부정할 순 없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비장애예술과 장애예술의 명확한 차이점은 당사자성이다. 장애에서 비롯한 경험이 작품에 뚜렷이 영향을 미친다면 장애예술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장애인이 획득한 예술적 성취가 비장애인의 비장애예술과 비교해 그 결이 비슷하다면 굳이 장애예술이라는 레이블을 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와 관련된 메시지가 작품에 담기지 않았다면, 장애예술이란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오판이자 오만이다.

몇 가지 예시를 들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고대 그리스로 올라가 보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는 앞을 보지 못하는 음유 시인이었다. 그런데 그의서사시와 시력 장애 간에 어떤 관계성이 존재하던가? 베토벤도 마찬가지다. 점점 들리지 않다가 아예 청력을 상실한 후 작곡한 교향곡 9번은 오히려 노래와 합창까지 수반한 대편성을 갖췄다. 결국 우리가 장애를 극복한 위인이라 칭하는 예술가들이 다들 여기에 속하는 셈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가수 레이 찰스와 스티비 원더, 일본의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 이탈리아의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 같은 선천적인 시력 장애부터 14세 때 입은 낙상으로 다리의 성장이 평생 멈춰 버린 비운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환각, 망상, 행동 이상 등을 만성적으로 겪는 조현병 환자였던 반 고흐와 에드바르 뭉크, 사고로 입은 화상 때문에 왼쪽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 기능을 상실한 후 운지법을 새롭게 고안한 재즈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어 왼팔로만 연주하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 같은 후천적인 장애까지, 이들은 모두 비장애인과 대등하게 활동하며 고전이 된 창작물을 발표한 인물들이다.


장애인의 당사자성에 집중한 장애예술가들

우리가 주목할 사례는 장애인의 당사자성을 기반 삼아 장애예술을 시도한 작가들이다. 이때 장애는 절단, 마비 등 움직임과 기능에 영구적인 손실이 오는 신체적인 장애와 조현증부터 각종 정신 질환에 이르는 비신체적인 장애로 나뉜다. 장애에 대한 경험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선천적 장애와 갑작스런 사고 혹은 질환의 악화로 인한 후천적 장애도 구분해야만 한다. 상실에 대한 경험은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예술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까닭이다.

흥미로운 점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비신체적인 장애를 지닌 인물이 장애예술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데 있다. 예술도 지적 활동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의지가 움직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측면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해당 카테고리를 대표하는 인물은 구사마 야요이다. 우리에게 ‘땡땡이 작가’로 잘 알려진 그는 어린 시절 세상이 점으로 모두 뒤덮이는 환영을 보고 매일 점에 잠식당하는 공포에 시달렸다. 이때 구사마는 회피 대신 끝없이 피어오르는 점의 환영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이를 역이용해 자신의 의지대로 점을 활용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캔버스와 공간마다 반복적으로 점과 선을 표현하며 스스로 점의 통제자가 된 그는 자신의 장애를 온전히 드러내며 사람과 소통하고,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세계에 우리를 인도하는 매개자 역할을 맡고 있다.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정신 수양의 목표까지 있으니, 예술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미국의 섬유예술가 주디스 스콧도 무척 흥미롭다. 다운증후군을 달고 태어난 후 어릴 때의 성홍열로 청력까지 잃은 그는 당시 정신장애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35년 동안 시설에서 살았다. 이후 40세가 넘어 쌍둥이 자매의 노력으로 바깥세상에 나온 후에는 장애를 가진 예술가에게 스튜디오 공간을 제공한 세계 최초의 조직 중 하나인 오클랜드 CGAC를 다니기 시작했다. 2년 동안 회화며 드로잉 등 어디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가 섬유예술 워크숍에 갑자기 빠져든 그는 바느질하는 다른 수강생과는 달리 다양한 물건을 색실로 감싸 고치처럼 만드는 독특한 표현 기법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뉴욕 현대 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에 작품이 영구 소장됐고, 지난 2017년에는 세계 최고의 미술 행사인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받으며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신체적인 장애 경험을 장애예술로 풀어내는 예술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예술의 전형일 것이다. 주로 사고나 갑작스런 뇌졸중이 초래한 마비 증세가 큰 비율을 차지한다. 주목할 만한 흐름은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며 원초적인 신체가 지닌 한계에 도전하는 무용이다. 신체통합무용(Physically Integrated Dance) 또는 장애포괄무용(Inclusive Dance)이라고 부르는데, 1980년 춤추는 휠체어 무용단(Dancing Wheels Company)을 창립한 미국 최초의 전문 휠체어 무용수 메리 베르디-플레처와 1991년 설립되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캔두코 무용단의 셀레스테 단데커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 모두 장애인과 비장애인 무용수가 함께 활동하는 현대무용단을 꾸리면서, 휠체어를 탄 무용수만이 할 수 있는 움직임과 비장애인 무용수의 몸짓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탐색하며 독보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장면을 연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재미있는 지점은 이들이 영역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의 장애예술 투쟁이 깊게 연관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휠체어 무용단 캔두코는 휠체어를 탄 무용수만이 할 수 있는 움직임과 비장애인 무용수의 몸짓이 어우러지는 모습으로 독보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장면을 연출한다 © Anthony Crickmay


소수자가 사회에 조화롭게 뒤섞일 수 있도록

지금은 당연해 보이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와 인권 보호는 서구권에서도 첨예한 대립 끝에 얻어 낸 성과다. 미국의 경우, 1990년 미국 장애인법(The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이하 ADA)이 제정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투사처럼 행동했다. ADA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장애인이 시민으로서 누리는 권리를 보호하는 연방 정부 차원의 민권법이다. ADA가 통과한 덕분에 법적으로 장애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공공 기관과 민간 기업을 상대로 소송이 가능해졌으며, 모든 건물과 도로마다 휠체어 이동권을 보장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세계에서 가장 이르게 제정된 ADA 덕분에 미국 장애예술이 한 단계 도약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국 또한 장애인 권리 운동의 여파로 1995년 장애인차별금지법(Disability Discrimination Act, 이하 DDA)이 생기며 장애인에 대한 배제와 불이익의 원인을 사회적 태도와 환경적 장애물로 명시했다. 덕분에 장애예술은 절정에 이르렀고, 2004년 DDA를 개정할 때 장애인 평등 의무 조항이 추가되면서 장애예술이 취하는 자세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기존에는 차별에 대항해 장애예술의 온전함과 참여자의 인정을 요구했다면, 이제는 통합을 기조로 장애를 넘어 소수자가 사회에 조화롭게 뒤섞이는 형태로 발전했다. 드디어 장애인의 당사자성 유무에 구애받지 않고도 비장애인이 주도하는 장애예술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는 면에서 궁극적인 지향점이 열린 셈이다. 우리가 살펴보던 마지막 카테고리의 열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이슈를 남긴 작업이 바로 영국의 조각가 마크 퀸이 발표한 <임신한 앨리슨 쿠퍼>다.


모든 예술은 사회적 연대를 위한 매개체

영국 런던 한가운데에 자리한 트래펄가 광장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전쟁 영웅들의 동상이 주르륵 서 있다. 그중 어쩌다 보니 비어 버린 네 번째 기단에 공공 미술작품을 공모하는 프로젝트는 매년 관심사다. 그 유명세에 큰 역할을 한 주인공이 2005년 첫 타자로 나선 마크 퀸이었다. 그는 구족 화가로 활동하는 앨리슨 래퍼의 임신한 나신을 3D 스캔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서구에서 기념비적인 석상 제작에 사용하는 이탈리아 카라라 지역의 하얀 대리석을 구해서, 두 팔은 없지만 생명을 잉태해 배가 볼록하게 나온 쿠퍼의 모습을 12톤 무게의 조각상으로 완성했다. 공개 후 언론과 대중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작가는 트래펄가 광장에 세워진 남성 전쟁 영웅의 동상들을 과거로 상정하고, 장애인 여성의 임신한 모습을 인류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가능성으로 제시하며 동일한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후 해당 작품은 2012년 런던패럴림픽 개막식에서 거대한 공기 조각으로 재구현되어 21세기 장애예술의 새로운 장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란 평을 받았다.

결국 지금의 장애예술은 장애인이 당사자성을 내세우며 주체를 독점하기보다 서구 사회의 선주민, 흑인, 유색 인종, 성소수자 그리고 여성에 이르기까지, 장애가 지닌 소수성을 함께 공유하는 집단이 전체 사회와 어떻게 통합적인 관계를 지향할 수 있는지 물음을 던지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천천히 성취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및 성숙도와 관련이 깊다. 결국 예술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 공유하고 싶은 가치를 전달하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순간적으로 건강할 뿐이다’라는 말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를 곱씹어 볼 때다.


영국의 컨템포러리 미술가 마크 퀸은, 두 팔은 없지만 생명을 잉태해 배가 볼록하게 나온 구족화가 앨리슨 쿠퍼의 모습을 12톤 무게의 조각상으로 완성했다 © Marc Quinn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을 지냈고 2021년부터 3년간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 공간, 건축, 예술에 대해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문화예술 매거진 <비애티튜드>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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