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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FOR THE EARTH·칼럼 1] 기후위기 시대, 음악계의 움직임

지난겨울 지구는 많이 아팠다. 그전의 여름도, 그전의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번역 출간된 책 『북극에서 얼어붙다』는 북극 탐사대의 보고를 통해 북극 온도가 한 세기 전보다 무려 5~10도나 높아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준다.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정치가와 다국적 기업들만의 책임일까. 우리의 미래를 구하는 일에 음악가와 음악 산업이 협력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과 사계 2050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의 <사계 2050> 무대 © Keunho Jung /뮤직앤아트컴퍼니 제공


지구 없이, 음악도 없다

<사계 2050>은 디지털 마케팅 회사 아카(AKQA)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하기 위해 2021년 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기후학자들이 예측한 세계 지역별 기후변화 데이터를 비발디의 <사계> 원곡에 적용해 AI가 편곡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6개 대륙 14개 도시에서 공연됐다.

서울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사계 2050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2021년 10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버전이 연주됐다. ‘봄’과 ‘여름’에서 들리던 새소리는 새들의 서식지 파괴를 반영해 편곡된 악보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여름’과 ‘가을’은 폭염과 태풍이 기승을 부리게 되는 것을 상징하듯 더 거칠게 표현됐다. 같은 해 11월 1일 스코틀랜드에서 개막한 제26차 UN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선 개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사계 2050> 연주가 24시간 온라인 중계됐다.

한 해 뒤인 2022년 9월에 임지영과 사계 2050 프로젝트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버전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더욱 빨라진 기후변화를 반영해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금관 악기와 타악기가 더해졌다. 파괴된 자연의 모습은 더 강력해진 불협화음으로 표현됐다.

지난해 9월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과 손잡은 <사계 2050-대전>이 선을 보였다. KAIST 측 연구진이 인공지능 활용과 알고리즘 개발, 편곡을 맡았다. 2050년의 대전은 하루 최고 기온이 2.4도 오른 섭씨 39.5도로 높아지고 폭염 일수도 28.9일에서 47.5일로 증가하는 걸로 분석됐다. ‘여름’에 붙은 소네트(짧은 시)는 “무자비한 여름 태양 아래 시민과 나무들 모두 시든다. 나무들은 갈라진다. 그 지친 몸은 벌레와 말벌 떼로 고통받고, 번개와 요란한 천둥이 두려워 휴식을 찾지 못한다”로 바뀌었다. ‘겨울’도 빠르게 옥타브를 넘나드는 편곡으로 자주 반복되는 극심한 추위를 묘사했다.


기후위기, 음악으로 전달하기

기후변화 데이터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은 <사계 2050>이 처음은 아니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은 일반적으로 그래프 등 시각적 이미지로 나타낸다. 청각적 이미지 또는 음악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미국 미네소타대 학부생 다니엘 크로포드는 2013년 NASA의 지구 표면 온도 데이터를 첼로의 세 옥타브 음역에 적용했다. 기록상 가장 추운 해인 1909년의 영하 0.47도는 첼로의 가장 낮은 C음으로 설정했다. 각각의 음표는 1880년부터 2012년까지의 연도를 나타내고, 기온이 0.03도 오를수록 반음이 높아진다. 이렇게 만든 악보는 첼로곡 <온난화하는 행성의 노래>가 됐다. 실제 연주는 유튜브에서 들어 볼 수 있다.

2년 뒤 크로포드는 현악 4중주 <행성의 연결, 온난화 세계(Planetary Bands, World)>를 발표했다. 첼로는 적도 지역의 온도를, 비올라는 중위도 지역, 바이올린 한 대는 고위도, 다른 한 대는 북극의 기온을 나타낸다. 크로포드는 “서로 다른 기후대를 대비해서 음악을 만들면 숫자가 갖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음악은 논리와 감정을 연결할 수 있는 도구다”라고 설명한다.

기후변화 위기를 호소한 음악 작품은 이 밖에도 여럿 나와 있다. 존 루터 아담스의 관현악곡 <Be Ocean>(2013)과 키어런 브런트의 <떠오르는 바다 교향곡>(2020)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을 경고한 작품들이다. 명상적이고 친숙한 음악 어법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이탈리아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피아노곡 <북극을 위한 비가(Elegy for the Arctic)>는 전 세계적으로 시선을 끌며 환경에 대한 음악의 책임을 각인했다.

에이나우디는 2016년 6월 17일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부근의 북극해에 떠다니는 빙하 위에 그랜드 피아노를 설치해 이 곡을 연주했다. 800만 명의 지지를 이끌어 낸 그린피스의 북극 보호 운동을 환기한 행사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공연하는 동안 빙하에서 갈라진 큰 얼음 덩어리가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간명한 분산 화음과 후반부의 강력한 크레셴도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2019년 공식 발매 앨범 <Seven Days Walking>에 삽입돼 한층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지구를 위한 음악

음악가들과 음악 산업이 기후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영국 뮤지션 브라이언 이노는 2020년 자선단체 ‘어스퍼센트(EarthPercent)’를 창단했다. 그는 “전 세계 자선 단체가 모금하는 기부금의 단 3%만이 기후위기 해결에 쓰인다. 이는 충분치 않다”며 한층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한다.

어스퍼센트는 아티스트가 공동 저작권자로 ‘지구’를 등록하고 지구 몫의 수익을 어스퍼센트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한다. 한정판 앨범을 제작해 기부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아티스트는 미공개 곡을 어스퍼센트에 제공해 예술 활동으로 기부하고, 팬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소비함으로써 기부에 동참한다. 머큐리상 후보에 세 번 오른 애나 칼비, 노르웨이 아티스트 오로라 등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는 어머니 지구(Mother Earth)와 함께 공동으로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어머니 없이 음악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3년 아우구스부르크 필하모닉 연주자들이 ‘변화의 오케스트라’와 협력해 독일 메밍겐에서 진행한 기후 콘서트 ‘Im Wandel #trans:formen’


세계적 음악 기업들도 기후위기 해결에 나섰다. 유니버설뮤직, 소니뮤직, 워너뮤직 등 음반 업계의 주요 그룹들은 2021년 ‘음악 기후 협정(Music Climate Pact)’에 서명하고 2년 뒤인 2023년에는 음악산업 기후 단체(Music Industry Climate Collective, MICC)를 공동 설립했다. 여기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2030년까지 음반 등 제품 제조, 유통, 라이선스 등에서 발생하는 온실 가스 배출을 50% 이하로 줄이고 2050년에는 온실 가스 배출 0%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들은 스포티파이와 같은 스트리밍 회사와도 협력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연주자들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화석 연료를 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는 2018년 ‘변화의 오케스트라(Orchester des Wandels)’와 함께 기후위기 문제를 담은 콘서트를 열어 수익금을 환경 단체에 기부했다. 그는 대륙 내 이동에서는 가능한 한 비행기를 타지 않고 열차로만 다닐 수 있도록 일정을 짠다.


미국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미국 산림 보존 단체 ‘아메리칸 포레스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2020년 화재로 황폐해진 오리건주의 숲 복원 자금을 지원했다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지난겨울 미국 산림 보존 단체 ‘아메리칸 포레스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2020년 화재로 황폐해진 오리건주의 숲 복원 자금을 지원했다. 이 악단 측은 “악단 활동에 투어는 필수적이지만 기후에는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악단이 숲 복원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나무가 자라면서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투어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악단은 투어 중 화물량을 20% 줄이고 가능한 경우 기차로 운송하며 음악가들이 플라스틱 병 대신 재사용 가능한 물병을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등 다양한 환경 지속 노력을 펼치고 있다.

미국 오케스트라 연맹은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이 연맹의 부회장 헤더 누난은 “지구 온난화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종을 보전하는 데 오케스트라 연맹이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현악기 활에 사용되는 아마존의 페르남부코 목재의 멸종 위기를 상기시키는 ‘Know Your Bow’ 캠페인을 벌였다.

<사계 2050> 외에 우리나라에서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을까. 작곡가 이승규는 재활용 쓰레기로 만든 악기로 ‘업사이클 뮤직’이라는 새 장르를 열고 있다. 2022년 그는 버려진 농약 분무기로 만든 ‘유니크 첼로’와 레고 블록으로 만든 바이올린 등 업사이클(재생) 현악기를 공개했다. 그는 “우리가 무분별하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는 모습을 보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음악으로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업사이클 뮤직은 물질의 쓰레기뿐 아니라 마음의 쓰레기에 대한 해결 방안도 예술의 시선으로 질문한다. 이승규는 재두루미, 쇠똥구리, 북극곰 등 멸종위기 동물을 표현한 ‘잃어버린 동물의 사육제’를 작곡했으며 첼리스트 4명이서 ‘유니크 첼로 콰르텟’을 구성해 업사이클 악기로 전국에서 공연하고 있다. 지난해엔 광주 계림동에 문화공간 ‘물꼬’를 열어 업사이클 악기 연주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선단체 어스퍼센트는 아티스트가 공동 저작권자로 ‘지구’를 등록하고 지구 몫의 수익을 어스퍼센트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한다. 아티스트는 미공개 곡을 어스퍼센트에 제공해 예술 활동으로 기부하고, 팬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소비함으로써 기부에 동참한다


유윤종 동아일보 문화전문기자

1996년부터 동아일보 음악전문기자로 일했고,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장과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사무국장을 지냈다. 『푸치니』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낭만주의 음악의 완숙기로 불리는 19세기 중반 이후의 대편성 관현악과 성악 음악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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