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다시보기] 하이브리드 퍼포먼스 <콜드 블러드>: 짧은 순간들이 만들어 낸 긴 여운

  • 작성자 사진: artviewzine
    artviewzine
  • 3월 5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6일

2024년 12월 13일, 14일 |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대부분의 공연에서는 막이 오르기 전, 이미 세팅된 무대 세트와 소품들이 앞으로 펼쳐질 공연에 대한 대강의 분위기를 상상하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콜드 블러드>는 어떤 무대가 펼쳐 질지 조금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텅 빈 무대 위에는 커다란 스크린과 이동식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 뿐 세트나 소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진행요원처럼 새까만 옷을 입은 창작진만이 좌우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윽고 암전이 시작되자 예상을 뛰어넘는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무대 위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정교한 미니어처와 인형, 조명과 소품이 만들어 내는 작은 세계가 카메라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 스크린에 비쳤다.


김주연 연극평론가 | 사진 최재우


<콜드 블러드>는 한 편의 일회성 영화와도 같은 공연이다.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카메라에 의해 실시간으로 촬영되어 스크린에 투사된다. 하지만 필름으로 남아 언제든지 돌려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이 작품은 오직 공연 시간 동안만 촬영될 뿐, 막이 내리면 곧바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유일한 기록 장치는 지난 12월 13일과 14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에 모여 현장에서 무대를 지켜본 관객들의 기억뿐이다.

75분의 길지 않은 공연이지만 매 장면 눈을 뗄수 없게 만드는 무대 위 풍경, 한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창작진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다양한 감각으로 삶을 환기시킨 공연의 여운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실제로 13일 공연이 끝나고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이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가면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이 특별한 영화는 인생에서 딱 한 번만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숨을 꾹 참으면서 봤다”는 관객들의 생생한 감상이 이어졌고, 이에 창작진 또한 깊은 감사와 감동을 표시하면 서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빚어내는 고독과 절망, 사랑

비행기 사고로 시작되는 첫 장면부터 우주 비행사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콜드 블러드>는 7개의 각기 다른 죽음의 순간을 다루고 있다. 죽음의 시간도, 공간도, 형태도, 느낌도 다 다르지만, 7개의 죽음은 모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죽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각 인물은 소중했던 이의 살결이나 그리운 순간의 향기 등 오감으로 새겨진 감각을 떠올리며 삶을 추억한다. 장면장면 스크린에 펼쳐지는 삶의 순간들은 매우 개별적인 기억이면서 도 보편적인 향수를 자아내는 것들이어서, 보는 내내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추억들이 선명하게 살아나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안무가 미셸 안느 드 메이가 안무와 실연을 맡아 선보인 손과 손가락 안무는 마치 살아 있는 인물처럼, 때로는 그 이상으로 섬세한 감정의 결을 살려 내면서 고독과 절망, 그리움 같은 감정들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녀는 이러한 손가락 안무가 특별한 감정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손가락의 정교한 움직임뿐만 아니라 세트, 미니어처, 음악과 음향 그리고 내레이션 등 무대 위 다양한 요소들이 손가락과 함께 어우러져서 하나의 의미망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공연이 여러 예술가들의 공동 창작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콜드 블러드>는 전 세계에서 공연할 때마다 그 나라의 언어로 내레이션을 새로 녹음하는데, 이번 한국 공연의 녹음을 맡아 준 유지태 배우의 음성이 작품의 의미를 더욱 깊고 아름답게 전달했다는 점을 덧붙였다.

실제로 유지태 배우는 이들 창작진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2014년 첫 내한 공연이었던 <키스 앤 크라이>에서 도 작품의 내레이션을 맡은 바 있으며, 이번 공연에서는 낮고 깊은 목소리로 낭독하는 내레이션이 끝나자마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영화 <올드 보이>의 OST 중 ‘우진(극중 유지태 배우가 열연했던 역할)의 테마’가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비장하면서도 애달픈 멜로디를 배경으로 환한 프리즘 속에 펼쳐진 만화경 같은 손가락 안무는 그 자체로 다채로운 감정을 끄집어내면서, 오로지 순간으로 만 존재하기에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우리 삶을 관객 각자의 기억 속에 각인시켰다.



Коментарі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