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음악과 언어를 엮어 내는,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
- artviewzine
-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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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3월 6일
크리스티안 게르하허는 무대 위에서나, 혹은 무대 밖에서 나 한결같이 진지하고 사려 깊은 사람인 듯하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깊고 오랜 숙고를 거쳤으며, 그 어떤 주제도 얼버무리거나 에두르지 않고 핵심을 짚어 낸다. 사회 문제에 관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며, 음악과 사회에 관한 통찰력을 담은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내한 연주회를 앞두고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도 게르하허는 성실하고 꼼꼼하게 대가수가 바라보는 세상과 음악을 전해 주었다.
글 이준형 음악 칼럼니스트

©Clive Barda
우선 내한 연주회를 환영합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헌신을 통해서 300여 곡에 달하는 가곡 전곡을 녹음한 슈만 프로그램이라니 더욱 반갑네요. 대학생 시절 뮌헨에서 헤르만 프라이(Hermann Prey)와 볼프강 자발리슈가 연주하는 <시인의 사랑>을 들으면서 처음 슈만 가곡을 접했다는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슈만과 이번 프로그램에 관한 열정과 이해를 좀 나누어 주실 수 있을까요?<리더 크라이스>는 아주 유명한 작품입니다만 다른 작품, 특히 후기작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니까요.
제 생각에 슈만 가곡은 방대한 독일 가곡 레퍼토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며, 이후 현대까지 많은 가곡 작곡가에게 가장 중요한 영감을 준 존재라고 봅니다. 게롤트와 저는 슈만의 급진적인 미학을 사랑합니다. 복잡하고 모호한 시를 묘사적이거나 서술적, 혹은 오락 지향적이지도 않게 음악적으로 ‘번역’하는 방식을 통해, 텍스트와 음악을 추상적으로 결합하지요. 예를 들면, 그의 후기 가곡집 중 하나인 작품번호 90번(레나우 시에 의한 여섯 개의 노래와 레퀴엠)은 그런 예술적 자유를 매우 세련된 형태로 담았습니다. 슈만의 여러 가곡집은 가운데에 위치한 노래를 중심으로 배열한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다섯 개(2~6곡)의 노래가 하나의 틀을 이룹니다.
첫곡(레나우가 쓴 대규모 파우스트 시집에서 가져왔습니다)은 단순하고 거의 따분하게 시작하지만 첫 연이 거의 변화 없이, 하지만 겉보기에는 별다른 동기도 없이 갑작스러운 피아니시모로 되풀이되면서 다소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생겨나지요. 이 구조의 다른 쪽끝은 극도로 어두운 이 가곡집을 마무리하는 ‘레퀴엠’으로, 더없이 풍부한 형식과 내용이 결합하면서 강렬한 육체적 힘과 관능이 만들어집니다. 이 두 노래 사이에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노래 그리고 더욱 강렬한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노래가 조합을 이루어 비할 데 없는 감정의 추락과 활력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다시 그 가운데에 있는 가곡집의 중심이 네 번째 노래 ‘목장 아가씨(Die Sennin)’로, 여기서 삶의 다른 한쪽으로서의 죽음은 거의 희극적일 정도로 무심하게, 그럼으로써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방식으로 상대화됩니다. 이 가곡집은 아주 어두운 시를 더욱 어두운 음악으로 다시 배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노래는 영적인 그 무엇을 이해하려는 육체적인 노력이다”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곡 리사이틀이 당신의 예술을 드러내는 궁극적인 무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어떤 관념을 감각적으로 실현한다는 느낌은 가곡 리사이틀에서 가장 잘 실현되는 듯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이 지극히 수사적인 표현으로 노래를 통해서 언어를 제시하는, 일종의 ‘말하는 가수’라는 점에 항상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음악과 언어를 함께 엮어 내는 자신만의 방식은 무엇인지, 목소리의 ‘색채’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시 형식을 통한 언어는 가곡의 기초를 이루는 예술로, 대체로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때론 불가사의한 예술적 의지를 표현합니다. 그런 면에서 가곡은 오페라나 오라토리오보다 덜 구체적인, 관념적인 형식의 예술입니다. 복잡한 가사를 이해하는 것이 (가곡의) 목적이 될 수는 없지만, 불분명한 발음으로 인한 혼란이 없도록 노력할 수는 있죠. 그렇게 고유한 의미의 음향을 만들어 내고 청중이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제 작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청중에게 이를 가능한 한 간결하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노래의 채색’은 꼭 필요한 해석의 도구지만, 이런 ‘의미의 색채’를 가사에 있는 모음의 색깔과 뒤섞거나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모음의 색깔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죠.
당신의 연주, 특히 가곡 리사이틀에서 청중은 아주 중요한, 근본적인 부분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청중은 해석의 공동체와 같다”고 하신 적이 있지요.
그 말은 연주자와 청중이 예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한다는 뜻입니다. 가곡 리사이틀에는 오페라 극장의 프로시니엄(proscenium(커튼 앞에 있는 무대의 앞부분)) 같은 것이 없습니다. 무대의 환상과 청중 사이 일종의 장벽인 프로시니엄은 줄거리의 의미를 일반화해서 전달하는 기능을 하고, 그렇게 모든 청중이 ‘적어도 비슷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반면 가곡 리사이틀 배치는 그와는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다소 추상적인 예술 작품을 접하지요. 객석의 청중은 시 그리고 시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가곡을 자기만의 관점과 미묘하게 다른 ‘앵글’을 통해서 이해합니다. 연주자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청중과 같은 공간에서, 자기가 일정한 형태로 전달하는 예술 작품을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어렴풋이 감지할 따름이지요. 말하자면, 가곡에 관한 분명한 견해를 전달하기보다는 수많은 해석의 가능성이 만들어지는 예술과 정면으로 맞서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만날 청중 상당수는 독일어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물론 자막이 도움이 되겠지만, 이런 상황이 해석이나 연주의 변화를 불러오는지 궁금합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매우 미묘하고 추상적인 예술 작품, 다양한 방식의 이해를 통해 아름답게 빛나는 이 훌륭한 예술 장르에서 자칫 해석의 폭을 좁히거나 진부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연주자는 가사 그리고 가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음악이 결합하면 서 빚어낸 독자적인 표현 능력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이번 연주회에 피아니스트 게롤트 후버(Gerold Huber)와 함께 오시지요? 두 분은 같은 도시 출신이고 친구이자, 함께 공부하고 30년 넘게 연주한 평생의 예술적 동반자인데요, 두 분의 우정과 협력 관계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아내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걸 제외하면, 게롤트와의 협력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실이자 선물입니다. 다른 연주자를 존중하지만, 게롤트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가곡 피아니스트라고 감히 말하고 싶네요. 우리 두 사람은 가곡에 관해 다르게 접근합니다. 게롤트가 순수한 음악가로서 접근한다면, 학문적인 음악가가 아닌 저는 그보다 좀 더 가사에서 접근한다고나 할까요? 특히 리듬에 관한 문제에서 저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의 인도를 따릅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처음 슈만의 <시인의 사랑>으로 함께 연주를 시작한 지도 벌써 36년이 넘었네요. 이제 우리의 리허설 과정은 아주 효율적입니다. 리듬을 똑같이 맞추는 데 신경 쓰거나 과도한 의견 교환 없이 합리적으로 접근하고, 무대에서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으니까요.

피아니스트 게롤트 후버 ©Marion Köll
당신은 자연스러운 표현과 지적인 해석을 결합한 독특한 예술가입니다. 자신이 독학을 통해 탄생한 예술가라고 생각하시나요? 또 영감이나 영향을 받으신 성악가들이 있는지요?
대학에서는 의학과 성악을 동시에 공부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성악가 경력을 위해 개인적인 방법을 찾아야만 했죠. 긍정과 부정 측면이 모두 존재했는데, 스스로 예술적인 비전을 계발하고 실현해야만 했다는 점에서는 일부 독학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사실 ‘독학’은 예술가들에게 흔한 마음가짐입니다. 자기 자신을 가르치지 않고서는 예술가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동시에 피셔디스카우와 그가 남긴 유산의 추종자라고 생각합니다. 피셔디스카우는 가곡 레퍼토리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더 은유적이고 명상적인 스타일을 ‘발명’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유흥적이거나 심지어 개인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졌던 이 복잡한 장르에 청중이 지성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갖추도록 만들었지요. 그 밖에 다른 우상은 헤르만 프라이, 프리츠 분덜리히(Fritz Wunderlich), 호세 반 담(José van Dam)을 꼽을 수 있겠네요.
팬데믹 이후 음악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 연주회, 특히 가곡 리사이틀의 미래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연주하는 예술의 미래가 아주 밝지는 않은 듯해서 걱정스럽긴 합니다. 그래도 이런 훌륭한 장르, 클래식 음악에서 얻는 모든 기회와 즐거움에 감사하는 마음이죠. 이처럼 고도로 정제된 예술 형식이 금세 사라지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유럽, 특히 독일에서 클래식 음악 교육은 점점 빈약해지고 있습니다. 예술 교육이야말로 가곡처럼 문학과 음악, 많은 역사적 의미를 담은 복잡한 예술 형식의 이해를 위해 정말 중요한 기반인데 말이죠.
앞으로의 연주와 계획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저와 게롤트는 이번 시즌에 서로 다른 네 개의 슈만 프로그램을 연주하는데, 그중 하나는 소프라노 율리아 클라이터(Julia Kleiter)와 함께합니다. 또 브람스 가곡으로만 꾸민 리사이틀 실황 녹음이 5월 25일에 발매되죠. 비올리스트 타베아 치머만(Tabea Zimmermann)과 함께하는 리사이틀에서는 브람스와 로베르트 푹스(Robert Fuchs), 볼프강 림(Wolfgang Rihm), 오트마르 쇠크(Othmar Schoeck) 등의 작품을 연주합니다.
그 밖에 슈베르티아데, 위그모어홀,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 도쿄 봄 페스티벌 등에서 오페라 <파르지팔〉과 <시몬 보카네그라>, 오라토리오 <엘리야>, 콘서트 형식으로 상연하는 슈만의 <괴테 파우스트의 장면들>, 브람스 <독일 레퀴엠>, 말러, 볼프, 슈베르트, 베버, 슈만, 알폰스 디펜브로크(Alphons Diepenbrock)의 관현악 가곡과 아리아를 연주하지요.
내년 시즌에는 게롤트와 제가 만든 소규모 축제인 ‘가곡 주간(Liedwoche)’의 네 번째 시즌을 엘마우 성(Schloss Elmau)에서 개최하면서 슈베르트 가곡을 모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입니다. 오페라 무대에서는 파리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을 노래하고 잘츠부르크에서는 <라인의 황금>의 보탄, 취리히에서는 <탄호이저>의 볼프람을 노래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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