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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옆 영화관] 영화 <걸어도 걸어도>: 남들보다 못한, 그래서 더애잔한 가족

  • 작성자 사진: artviewzine
    artviewzine
  • 4월 15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16일

일본 가요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1968)는 흥겨운 듯 애잔한 노래다. 한국인 귀에도 익숙하다. ‘아루이테모~ 아루이테모~’라는 가사가 특히 귓가에 맴돈다. ‘걸어도 걸어도’라는 뜻이다. 일본 영화계 간판 고레에다 히로카즈(Hirokazu Koreeda) 1962~ 감독이 2008년 선보인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저 유행가 가사에서 영화 제목을 빌려왔다고 밝혔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닮았다. 즐거움과 슬픔 사이 어디인가에 있는 듯하다. 가족이라는 따스한 소재를 다루나 마냥 정겹지는 않다. 화면에 냉기가 서릴 때가 종종 있다. 때로는 남들보다 못한, 그렇다고 외면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115분 동안 이어진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모이면 불편한 어느 가족

요코하마의 요코야마 집안에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다. 어머니 도시코(기키 기린)와 딸 지나미(유)는 음식 장만으로 바쁘다. 도쿄에서 차남 료타(아베 히로시) 가족이 도착한다. 지나미의 남편과 아이들도 함께한다. 명절은 아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막바지 또는 가을 초입이니까. 아버지 교헤이(하라다 요시오)나 도시코의 생일도 아니다. 10년 전 바다에서 소년을 구하고서 숨진 장남 준페이의 기일이다.

료타는 모든 게 못마땅한 눈치다. 집 근처에 일찍 도착하고도 일부러 패스트푸드점에 들른다. 그는 아내 유카리(나츠카와 유이)에게 “집에 가도 할 얘기가 없는걸”이라고 말한다. 그럴 만도 하다. 료타는 교헤이의 기대와 바람에 한참 못 미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기는커녕 돈벌이가 의심스러운 그림 복원 일을 한다. 유카리는 전남편과 사별한 뒤 아들 아츠시(다나카 쇼헤이)를 데리고 료타와 재혼했다. 게다가 료타는 최근 일자리를 잃었다. 의사 준페이가 자식 없이 비명에 갔으니 료타를 향한 부모님의 눈초리는 더 따갑다.

가족이 모이니 불편하기만 하다. 교헤이는 외손자와 외손녀, 아츠시를 보고선 자기 방으로 직행한다. 자기 핏줄이 아니라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료타는 아버지의 완고함이 싫다. 준페이를 여전히 우선으로 여기는 어머니가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이런 료타의 마음을 모르는 걸까, 교헤이와 도시코는 아픈 곳을 찌른다. “아이 딸린 과부는 재혼하기도 힘들어”(교헤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거나 “(아들) 둘 중 하나라도 아버지 뒤를 이어줬으면 좋았을 텐데”(도시코)라고 한탄한다.


가족은… 아무도 모른다

료타의 가족은 무엇이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관계가 뒤틀린 걸까. 준페이의 죽음이 가족 구성원을 서로 불편하게 만든 걸까. 아니면 가족은 태생적으로 어긋나게 돼 있는 걸까.

고레에다 감독에게 가족은 거대한 물음표다. 그는 가족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영상으로 지속적으로 서술해 왔다. 때로는 피가 물보다 진하지 않다는 걸 제시하고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성을 언급한다. 마냥 가족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가족은 사람에게 종종 힘이 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아무도 모른다>(2004)를 보자. 생계를 어렵게 유지하던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다. 열두 살 소년 아키라(야기라 유야)는 어린 동생 셋을 돌본다. 어머니는 네 남매에게 상처를 줬으나 아키라는 동생들이 있기에 삶을 버텨 낸다. <환상의 빛>(1995)의 젊은 여성 유미코(에스미 마키코)는 어떤가. 남편이 까닭 모르게 자살하자 유미코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유미코의 아픔을 달래 주는 건 재혼한 다미오(나이토 다카시)의 가족이다. <어느 가족>(2018)의 유사 가족은 핏줄이 아닌 이익으로 뭉친 ‘범죄 집단’이나 혈연 못지않은 끈끈함을 지니고 있다.

가족은 재앙인가, 축복인가. 가족은 핏줄로만 규정할 수 있는 건가, 그렇지 않은 건가. 고레에다 감독은 질문을 던지며 가족의 정의와 의미를 관객과 함께 찾아 왔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영화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가족’은 이어진다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감독의 여느 가족 영화와 결이 다르다. 부모와 자녀 모두 성인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딸 지나미도, 차남 료타도 각자의 삶이 있고 가치관이 있다. 하지만 교헤이와 도시코는 여전히 아들과 딸을 통제하려 한다. 특히 교헤이는 전통적 가부장제 사고에 젖어 있고 의사라는 선민의식에 취해 있다. “내가 일해 지은 집을 왜 ‘할머니 집’이라고 하느냐”며 지나미를 나무라는 모습이나 “저런 하찮은 놈(준페이가 구해 준 요시오) 때문에 하필 우리 애가”라고 분노를 터트리는 대목에서 그의 성정을 짐작할 수 있다. 도시코도 봉건적이다. 료타가 ‘애 딸린’ 유카리와 헤어지기를 노골적으로 바란다.

교헤이와 도시코는 유별난 부모가 아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지나친 기대와 바람을 갖기 마련이니까. 교헤이는 응원하던 프로스포츠팀을 야구(베이스타즈)에서 축구(마리노스)로 바꿀지언정 료타에 대한 생각은 변함없다. 그렇다고 다 큰 자녀가 부모 마음대로 살리는 만무하다. 변화한 세상의 바뀐 가치관에 발맞춰 살아간다. 부모와 자식의 생각이 엇갈리니, 말은 안 통하고 함께한 자리가 불편할 수밖에. 료타가 “부모님 댁 방문은 1년에 한 번이면 족하다”는 결론에 이른 이유다.

부모 자식 사이만 그럴까, 교헤이와 도시코는 수십 년 살고도 소통을 못 한다. 도시코는 아내를 줄곧 없는 사람 대하듯 하는 교헤이에게 비밀이 담긴 노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들려주며 의사 남편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일깨워 준다.

료타도 안다, 부모에게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도시코가 기억해 내지 못해 물었던 스모 선수 이름을 뒤늦게 떠올린 후 말한다. “늘 이렇다니까. 한발씩 늦어.” 자식은 부모 마음을 늘 조금 늦게 깨닫거나 부모에게 소홀했음을 뒤늦게 반성한다. 그렇다고 료타는 쉬 변하지 않는다. “아들 차 타고 쇼핑 한번 해 보고 싶다”는 도시코의 소박한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한다. 부모에게 싹싹한 지나미 부부도 료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웃음 뒤에는 금전적 계산이 숨겨져 있다.

가족은 늘 곁에 있는 존재라 착각한다. 뒷전 취급하거나 소통을 외면하다가 잃고서 후회를 한다. 사람들은 알면서도 그렇게 산다. 삶이라는 길을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말이다. 료타는 노년이 되면 자신의 아버지와 닮은꼴이 될 것이다. 그가 아내의 아들 아츠시를 차에 태우고 한 핏줄처럼 키우며 전통 가족과 다른 현대적 가족을 꾸려 간다고 해도 말이다. 아츠시라고 친구 같은 아버지 ‘료짱’ 생각대로 살아갈까. 가족은 서로 무심하게 대하고 상처 준 후 후회하다 뒤늦게 그리워하는 숙명을 지녔다고, 그렇게 가족은 이어진다고 고레에다 감독은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는 5월 19일(월) 성남미디어센터의 <시네클럽 영화 인문학: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으로 만날 수 있다.

문의: 성남미디어센터 031-714-8370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 전문기자

한국일보 입사 후 편집부와 사회부, 국제부 등을 거쳐 엔터테인먼트 팀장과 문화부장, 신문에디터로 일했다. 2004년부터 영화를 취재해 왔으며, 영국 서식스대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저서 『질문하는 영화들』 『말을 거는 영화들』, 역서 『할리우드 전복자들』로 영화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소통하는 한편, 뉴스레터 ‘영화로운’으로 매주 구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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